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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삶과 죽음 사이의 '끄덕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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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는 마음이 만드는 개인과 사회의 역사
마음 공유 통해 잘못 끼운 단추 다시 채워야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자 의원보좌진 등 관계자들이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자 의원보좌진 등 관계자들이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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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일제강점기부터 격동의 역사를 모두 겪은 할머니는 현명한 분이셨다.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존경스러웠다. "인생이 참 짧다. 재밌게 살아. 서로 이해하고." 유언처럼 해주신 말씀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 같아 가슴에 새기고 살려다 보니 최근 들어 취재원들을 만나면 유독 삶과 죽음에 관한 얘기를 많이 나눈다. 완전히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사이에 관통하는 점이 있다. 바로 '공감하는 마음'이다.


삶은 탄생부터가 여간 일이 아니어서 인구 문제는 빠지지 않는 화두다. 근래의 이야기는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갔다가 전교생 수에 놀랐던 경험에서부터 출발했다. 초등학교 오전반·오후반을 경험했던 세대로서, 자녀와 함께 입학하는 동급생 수가 100명 남짓이라는 사실에 새삼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때부턴 은연중에라도 자녀에 대한 의사결정 시 '나 때'를 반추하지 않고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됐다는 얘기다.

죽음은 보다 스펙트럼이 넓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혜신 작가가 쓴 '애도 연습'은 삶과 죽음에 대한 내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책이어서 만남에서 자주 인용된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잘 살기 위해,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건 공감하는 마음이라고 느꼈다. 정 작가는 잠시 후에 영영 못 보는 상황이 될지라도 덜 아쉽고 덜 후회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지금 여기'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한다고 했다. 많이 웃고 많이 느끼고 많이 나누는 방식으로 집중한다. 죽음을 위한 대비의 모든 것은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사실, 더 정교하게는 사랑하고 사랑받은 삶을 살았음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과정 역시 공감하는 마음을 빼고선 생각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얘기에서는 무엇보다도 12월3일 밤, 눈앞에 드리웠던 공포에 대한 비현실적인 체감이 월등한 비중을 차지한다. 시민들이 발밑을 밀어 올려 '소방차 안무하듯이' 국회 담을 넘는 걸 도와줬다는 이야기, '계엄군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라는 일념으로 무서운 줄 모르고 긴박하게 움직였던 치열했던 그 날 밤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도 그 공간에 공감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그 마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정 작가는 사람이 살면서 접하는 모든 상황에 사실과 정서가 함께 존재한다며, 감정 기능이 마비돼 정서를 느끼지 못하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그러면 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고 말한다. 관계는 당연히 꼬이게 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다음 단추들도 잘못 끼울 수밖에 없듯이 감정을 느끼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 대인관계든 현실감각이든 그 사람이 내리는 모든 판단이나 해석들이 줄줄이 잘못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은 결국 우리의 몫'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 작가는 죄의식에 대해 '타인의 고통과 심리적으로 연결된 존재, 감정이입을 잘하는 탁월한 공감의 소유자들이 갖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공감 중에서도 탁월한 공감이다. 공감 능력의 부재가 낳은 잘못 끼운 단추를 다시 제대로 채우는 건 결국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의 몫이다. '지금 여기'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과 서로 이해하면서 만들어가야 할 삶 그 자체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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