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등 3개 기관 조사 중
내년 1월 출범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에서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보안규정 위반 혐의로 군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고 등급의 미 군사기밀 접근권을 가진 머스크 CEO가 외국 정상들과의 회동 등 민감한 정보를 정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감찰관실을 비롯해 국방부 정보·안보 차관실, 미 공군 등 최소 3개 정부 기관이 머스크 CEO의 국가 기밀 보안 규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개별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테슬라, 스페이스X 등을 이끄는 머스크 CEO는 정부 기관과 여러 방위 계약을 체결하며 최고 수준의 미 군사기밀 접근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저궤도 위성통신망과 우주선 개발·운항 사업을 하는 기업으로서 2019~2023년까지 미 국방부 및 미 항공우주국(NASA)과 도합 최소 100억달러(약 14조원)의 연방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민감한 군사기밀을 다루는 계약인 만큼 스페이스X 관계자들은 정부 심사를 거쳐 수준별로 각기 다른 기밀 접근 권한 등급을 부여받은 상태다.
머스크 CEO 역시 대략 2018년까진 중간 수준의 기밀 접근권을 갖고 있다가 같은 해 ‘1급비밀’(Top Secret) 등급을 신청해 2년여 만에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국가안보 및 기밀보호 체계에서 ‘2급비밀’(Secret)과 ‘3급비밀’(Confidential)을 상회하는 최고 수준의 등급이다.
문제는 머스크 CEO가 최고 기밀 접근권을 가진 사람에게 적용되는 규정에 따라 사생활이나 해외여행에 관한 사안 가운데 국가 보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각종 정보를 정부에 보고해야 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머스크 CEO는 외국 정상들과의 만남이 잦고 마약을 처방받아 복용한 사실까지 있음에도 이를 당국에 알리지 않아 회사 안팎으로 우려가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대선 실세로 떠오르며 각국 정상들과 회동해온 머스크 CEO는 이날도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를 만나 시간을 보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페이스X 법무팀이 머스크 CEO의 이러한 규정 미준수 행보로 이미 가진 보안등급마저 박탈당할 것을 걱정해 1급비밀보다 더 엄격한 통제를 요구하는 SCI, SAP와 같은 특별 보안 등급은 신청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SCI와 SAP는 핵무기나 스텔스기 같은 극비 프로그램을 다루는 보안등급으로 현재 스페이스X 내에서도 제한된 인원만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이스라엘을 비롯해 유럽과 중동의 9개국 정부가 지난 3년간 미 국방부 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 머스크에 대한 보안 우려를 제기했다"며 "테슬라가 공장을 두고 있는 중국에서의 사업적 이해관계도 우려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및 군사위원회에 소속된 진 샤힌 상원의원은 "정부와 주요 계약을 맺은 사람이 고의든 실수든 기밀을 넘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이 같은 조사가 ‘퍼스트 버디’ 머스크 CEO에게 얼마나 제동을 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가 취임 후 누구에게든 기밀 접근 권한을 줄 수 있는 트럼프 당선인의 총애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향후 신설될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인 머스크 CEO가 각종 정부 기관을 통폐합하고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예고하면서 이를 의식한 국방부 관계자들은 내부적으로 관련 언급을 금지하는 등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민간 기업인 신분으로 연방 개혁 칼자루를 쥐게 된 머스크 CEO의 역할과 권한에 대해 이해충돌 문제가 제기된 첫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방부 계약을 감시하는 비영리단체 정부감독프로젝트(PGO)의 대니얼 브라이언 대표는 "머스크는 우리가 발견한 어떤 잘못을 폭로할 때 의지하는 정부 기관에 대해 매우 위협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며 "이는 우리의 책임과 견제, 균형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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