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침바다 갈매기' 어촌 트라우마 시달려
개인 아닌 집단 증상…다양한 사회 문제에 기인
불안한 기류, 대한민국 전체에도 흘러
침묵은 고통을 증가시킬 뿐…이야기 공유해야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 속 어촌 주민들은 저마다 트라우마가 있다. 영국(윤주상)은 둘째 딸을 잃었다. 상경을 뜯어말리다 벌어진 비극이었다. 영란(카작)은 베트남 이주 여성이다. 이웃들의 위선과 허위에 속이 곪아버렸다. 시어머니 판례(양희경)는 알지 못한다. 그저 실종된 아들 걱정뿐이다. 그렇게 쌓여가는 갈등은 한순간 폭발한다.
"난 여기서 살 수가 없어요. 아저씨가 죽어서 쫓겨난단 말이에요." "죽긴 누가 죽어?" "근데 왜 안 와요? 난 여기 말도 잘 못 알아듣고, 사람들은 다 웃기만 하고, 잘한다고만 하고. 난 혼자 사는데, 어머니 아프고 나 무서워요. 창녀라고 욕하고, 사람들이!"
개인적 트라우마가 아니다. 트라우마는 항상 관계적이다.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가족은 물론 공동체,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침바다 갈매기'에서 전해지는 울분과 아픔, 쓰라림은 다양한 사회 문제에 기인한다. 지방 소멸, 인구 감소, 노인 빈곤, 이주 외국인 차별, 행정 편의주의 등이다.
사회학자 카이 에릭슨은 저서 '새로운 문제들: 현대 재난에 대한 인간의 경험'에서 집단 트라우마에 대해 "공동체가 안전과 지원의 장소라는 생각을 갈기갈기 찢으며 우리의 기본적인 소속감에 타격을 준다"고 정의했다.
임상심리학자 에디스 시로도 저서 '트라우마, 극복의 심리학'에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개인 트라우마는 세상과 그 안에서 자기 위치에 대한 가정을 산산조각 낸다는 의미에서 파열이지만, 집단 트라우마는 전체 집단의 정체성과 신념 체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미에서 위기다. (중략) 공유된 집단적 역사의 조각으로서 나타나는 것으로, 분열과 고립을 일으키고 문화를 이루는 낱낱의 구조를 해체한다."
불안한 기류가 대한민국 전체에 흐른다. 12·3 비상계엄이 6시간 만에 해제됐으나 여전히 많은 국민이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 이 또한 트라우마다. 뉴스 머리기사만 듣거나 읽어도 엄습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와 처리해야 할 자원, 처리하는 방식에서 온다.
이는 단절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각종 네트워크와의 연결을 파괴하고 소속감을 깨뜨린다. 기본적인 자아 감각을 잃게 하기도 한다. 자존감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친절함에 대한 믿음, 신뢰, 안전, 친밀감, 심지어 죽음과 상실에 대한 이해까지 뒤흔든다.
침묵은 고통을 증가시킬 뿐이다. 이야기를 공유해야 아픔을 딛고 진일보할 수 있다. 공동체는 트라우마 역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치유하려면 공유한 과거와 화해하고, 그것을 현재와 통합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의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으며, 미래 세대를 트라우마의 순환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영국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씻어내며 영란과 판례의 앞길까지 닦아주듯.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돈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요"…요즘 다시 뜬다는 '이 카드'[주머니톡]](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93/2024011215422528113_1705041745.jpg)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