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핵심기술 분야, 소관 부처 아닌 위원회가 좌지우지
대통령 위원장 여파 각 위원회들 개점 휴업 상황
전문가 "각 부처에 일임해야 정치 회오리 피할 수 있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30일 경남 사천시 우주항공청 임시청사에서 열린 우주항공청 개청식 및 제1차 국가우주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면서 국가 기술 정책도 시계 제로 상태에 돌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라는 담당 부처와 별도로 대통령 산하에 과학기술 관련 위원회를 구성한 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과학계에선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위원회 구성을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현 정부 대통령 산하에는 국가인공지능(AI)위원회를 비롯해 국가바이오위, 국가우주위가 직속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위원장인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탄핵소추로 직무가 중단되면서 위원회 운영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국가바이오위가 대표적인 예다. 국가바이오위는 국가우주위, 국가AI위에 이어 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세 번째 전략 기술위원회다. 국가바이오위는 이달 중 출범 예정이었지만 사실상 무산됐다. 위원회를 구성해 대통령 참석하에 첫 회의를 해야 하지만 윤 대통령의 직무정지로 시계 제로 상태다. 국가바이오위는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 부총장을 부위원장으로, 다수의 관계부처 장관과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리보핵산) 연구단장, 고한승 한국바이오협회장, 김영태 서울대병원장 등 바이오 전문가 20여명이 참여한다.
국가우주위는 대통령 주재하에 연내 2차 회의를 열어 우주항공청 정책 방향 보고를 듣고 재활용발사체 등 향후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었다. 우주산업계에선 연내 회의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다. 우주청 관계자는 "대통령 권한 대행이나 방효충 부위원장 주도로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위원장인 대통령이 참석해 정책을 결정하는 것과는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국가AI위는 AI기본법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원장인 대통령은 물론 당연직 위원인 행정안전부 장관 공석까지 겹치며 혼란스러운 상태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지는 않지만 양자 과학기술 분야 정책을 총괄할 양자전략위도 연내 출범에 적신호가 켜졌다. 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업무가 늘어난 상황에서 시급한 업무가 아닌 양자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가 쉽지 않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기술 관련 위원회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반도체 특별법은 대통령 직속 국가반도체위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학계에선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위원회를 통한 과학기술 정책에 회의론이 나온다. 세계 과학기술 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도 대통령이 관련 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의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라는 부처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대통령실이 주도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옥상옥의 정책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관련 부처를 모두 아우르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겠다고 하지만 오히려 탄핵 과정에서 지나친 쏠림 현상만 확인됐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과학 분야 전문성이 없는 대통령이 과학기술 분야 위원장을 맡는 것은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 오히려 정권이 바뀔 경우 표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각 분야의 결정권은 과감하게 해당 부처로 내려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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