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집회 현장서 울려퍼진 K팝 히트곡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청취자 급증
응원봉 대여 게시물도 잇달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가운데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집회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이들은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참석하며 K팝 노래에 맞춰 직접 응원봉을 흔들기도 한다. 이는 엄숙하고 무거웠던 분위기의 과거 집회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시위 문화에 외신들 역시 주목하고 있다.
'탄핵 플레이리스트'에 맞춰 응원봉 흔드는 MZ
비상계엄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탄핵 플레이리스트' 등이 공유되고 있다. 해당 목록에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비롯해 에스파의 '위플래쉬', '슈퍼노바', 데이식스의 '웰컴 투 더 쇼', 세븐틴 유닛 부석순의 '파이팅해야지'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노래들은 많은 사람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떼창 파트가 많거나,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노랫말이 담겼다는 게 특징이다.
특히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의 경우,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새로운 민중가요로 부상하고 있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음원 플랫폼 멜론에 따르면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을 기점으로 일주일(12월 3∼9일)간 '다시 만난 세계' 청취자 수는 직전 일주일(11월 26∼12월 2일)보다 23% 증가했다. 이는 노래의 희망적인 가사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등의 가사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힘을 북돋아 준다는 것이다.
비상계엄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집회 참가 시민들이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국민의힘 당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탄핵 플레이리스트'에 맞춰 응원봉을 흔드는 시민들도 집회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응원봉은 휴대가 간편하고 발광력이 좋다는 장점 때문에 최근 집회 필수품으로 꼽힌다. 이에 응원봉을 구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실제로 네이버 데이터랩 쇼핑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8∼10일 생활·건강 분야에서 응원봉은 비데, 샤워기 헤드 등을 제치고 가장 많은 검색량을 기록했다. 최근 1개월 네이버 통합 검색량 추이를 보더라도 대규모 탄핵 집회가 이뤄진 지난 7일 이후 그래프가 급격히 상승했다.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응원봉을 대여해주겠다는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한 누리꾼은 "시위 나가시는 분께 응원봉 무상으로 대여해드리겠다"며 "보증금은 3만원이지만 문제없이 반납하면 3만원 돌려드리겠다"고 했다.
"시위도 밥 먹고 하세요"…선결제 기부 행렬도
그런가 하면 집회 현장 인근 가게에는 선결제 기부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13일 기준 국회 근처 커피숍에는 커피 100잔이 선결제 돼 있었고, 한 김밥집에는 야채 김밥 30줄, 치즈김밥 20줄, 참치김밥 20줄이 결제돼 있었다. 또 소금빵, 휘낭시에, 샌드위치, 만두 등 다양한 품목들이 집회 참가자들을 위해 미리 결제돼 있었다.
선결제 행렬이 이어지면서 이를 정리해놓은 사이트도 등장했다. '시위도 밥 먹고' 사이트는 서울, 광주, 부산 등 전국 각지의 선결제 매장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해당 사이트는 매장의 위치와 선결제 수량, 품목, 주문 가능 여부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사이트 개발자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건강 이슈로 시위 참여를 못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뭔가 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외에 '온라인 촛불 지도' 웹 사이트도 등장했다. 이는 집회 현장에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제작된 지도로, 지도에서 원하는 위치를 찍고 메시지를 입력하면 촛불을 켤 수 있다. 누리꾼들은 해당 사이트를 통해 "찬바람이 지나가면 따뜻한 봄이 온다", "자유로운 일상으로 돌아가자", "모든 사람들의 걱정이 사라지길"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외신도 주목한 韓 시위문화…"형형색색 응원봉"
윤석열 대통령 탄핵 2차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밤샘을 한 시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피켓을 들고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이 같은 시위문화에 외신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일 AFP 통신은 "윤 대통령이 국회에 군을 투입해 의원들을 체포함으로써 '시민의 지배'를 중단시키려 한 이후 서울의 중심부 광장부터 국회의사당에 이르기까지 시위가 일어났다"며 "K팝 속에서 참가자들은 즐겁게 뛰어다니고,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LED 촛불을 흔드는 등 일부 시위는 댄스파티를 연상케 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 역시 "K팝 응원봉이 윤 대통령 반대 집회에서 새 생명을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K팝의 흥겨운 정취가 최근 한국의 정치적 혼란상을 가려주고는 있지만, 시위 참가자들이 현 상황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또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지난 10일 '한국, 변하는 시위 풍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시위는)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들어간 축제의 북적임을 보여주면서도 질서정연했다. 차세대 민주주의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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