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전기차 파는 머스크가 석유·가스 외친 배경
"팬데믹 중 민주당에 반감 커지며 변화"
트럼프, 파리기후협약 재탈퇴하고
바이든 기후 법안 폐기 등 추진할 듯
→ "우리가 지금 당장 석유와 가스 사용을 중단한다면, 경제는 붕괴될 겁니다. 석유와 가스 산업을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2024년)
스스로 '친환경론자'라고 칭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변심했다. 친환경 움직임에 반감이 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손잡으면서 입장이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각한 문제라고 외쳤던 기후 위기를 두고 "(해결을)당장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등 트럼프 당선인과 결을 맞추는 모양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미국에서 기후 변화와 관련해 거침없이 말해왔던 인물 중 하나인 머스크 CEO가 이제는 기후 변화 리스크가 과장됐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러한 입장 변화가 트럼프 당선인의 기후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머스크에게 무슨 일이?
머스크 CEO가 보유한 기업 테슬라는 친환경의 대표 아이템인 전기차를 생산한다. 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쓴 머스크 CEO의 전기를 보면 머스크 CEO는 청년 시절부터 지구온난화와 화석 연료 고갈 가능성을 우려하며 전기차와 태양광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무엇보다 테슬라의 사업적 배경도 친환경 가치관을 배경으로 한다.
2016년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당시 머스크 CEO는 테슬라 네바다주 기가팩토리에서 "(기후 변화 문제로 인해) 전 세계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보고 있으며, 빨리 조치를 취할수록 그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시기 여러 차례 "테슬라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탄소 배출 제한이 필요하다며 관련한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고, 탄소세의 필요성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반면 트럼프 당선인은 당시 머스크 CEO와 대척점에 있다고 할 정도로 친환경 정책에 비판적이다. 이번 대선 유세 중에도 청정에너지 개발과 전기차 보조금 지원 등 조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1기 집권 중이던 2017년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해 전 세계의 비판을 한 몸에 받았다. 이때만 해도 머스크 CEO는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기업 자문 위원회 일원으로 활동했으나, 파리기후협약 탈퇴 움직임에 항의해 위원회에서 사임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머스크 CEO의 생각이 점차 달라졌다. 언론에서는 2020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겪으면서 머스크 CEO가 규제 강화 등을 이유로 민주당 정권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고, 진보 진영이 내세우는 기후 변화 이슈에 대해서도 인식 전환이 생겼다고 분석한다. 또 2018년에만 해도 머스크 CEO는 환경 비영리단체인 시에라클럽에 600만달러(약 86억원)를 기부하고, 기후 변화와 맞서 싸운 환경 단체에 감사하다고 공개 석상에서 발언한 적 있다. 하지만 올해 초 테슬라의 독일 기가팩토리에서 방화에 의한 정전 사태가 벌어지고, 방화범이 환경 운동가들이라는 의혹이 일자 그는 분노해 SNS에 이들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머스크 CEO의 입장이 본격적으로 달라졌음을 대중이 알아차린 건 지난 8월이다. 머스크 CEO는 트럼프 당선인과 진행한 라이브 스트리밍 환경 관련 토론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생각과 결을 맞췄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화석 연료 폐지 시점을 다소 늦춰야 한다고 발언했고,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류가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은 꽤 많이 남아 있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WP는 머스크 CEO가 인간의 생존에 지구온난화보다 로봇, 인공지능(AI), 인구 감소 억제, 화성 도달 등이 더 중요하다는 언급을 요즘 자주 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기후 변화 정책 축소 전망"
당초 공화당 내에서는 친환경 정책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트럼프의 마음을 돌리는데 머스크 CEO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고 한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8월 공화당 의원들을 인용해 "(머스크 CEO가) 기후 정책에 대해 트럼프를 흔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보도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기후 법안을 지지하는 세력이 적지 않은 만큼 트럼프 당선인이 입장을 다소 완화해주길 바랐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머스크 CEO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들어오면서 트럼프 당선인과 같은 친환경 정책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어 내년 정권 교체 이후 미국의 기후 정책은 기존의 정반대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크다.
차기 행정부에 신설되는 정부효율부(DOGE) 공동 수장으로 지명된 머스크 CEO는 지난달 SNS에 기후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 4명의 이름과 직책을 밝히고 "가짜 일자리가 너무 많다"고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동시에 기후 변화 문제보다는 인구 감소 문제 해결 등 다른 이슈로 초점을 돌렸다.
당장 트럼프 당선인은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다시 가입한 파리기후협약 탈퇴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또 2022년 바이든 행정부가 마련한 기후 관련 법안을 폐기하고, 전기료 인하와 에너지 증산을 위한 국가 에너지 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머스크 CEO 외에도 비벡 라마스와미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지명자, 엘릭스 스테파닉 주유엔(UN) 미국대사 지명자 등 트럼프 2기 행정부 주요 인사들도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 강한 편이다. 라마스와미와 루비오 지명자는 기후 변화 이슈가 이전부터 지속돼 왔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주목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스테파닉 대사 지명자의 경우 2017년 파리기후협약 탈퇴가 잘못된 결정이라고 했으나 지난 3월 "미국인들은 바이든과 극좌 민주당의 반미 에너지 정책에 지쳐 있다"며 올해 들어 입장을 바꿨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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