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환경기술 분야서 35년 현장 근무
기술의 사업화 과정 험난, 시민의식의 변화, 적극적 정부 지원 필요
"하루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져라."
국내 친환경 산업의 개척자이자, 환경 분야 최고수(最高手) 강인국 키나바 연구소장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그날 할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잠들기 전에도 오늘의 일정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 이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키나바는 가축분뇨나 음식물쓰레기를 이용해 고형연료와 바이오차 등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판매하거나, 관련 플랜트를 설계·제작하는 친환경 전문 벤처기업이다. 2019년부터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TIPA)의 연구·개발(R&D) 과제를 수행하는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 소장은 1989년 현대엔지니어링 환경기술연구소에 입사하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올해 35년째 환경기술개발과 사업화(상용화)를 위해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다.
학사·석사 환경공학과 1회 졸업생…환경산업 개척자의 삶
그는 서울과학기술대 80학번으로 환경공학과 첫 졸업생이자, 아주대 대학원 환경공학과의 첫 졸업생이다. 국내 5개 대학에만 환경공학과가 존재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국내 환경 산업을 개척한 1세대 산업역군이다. "1980년 용인자연농원의 가축분뇨 유출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환경 전문가의 중요성을 깨닫고, 환경분야를 더욱 깊게 파고들 결심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정윤진 아주대 교수는 큰 힘이 됐다. 국내 환경분야 최고 권위자였던 정 교수는 국내 어느 대학이나 연구실에도 없는 실험설비를 직접 설계·제작해서 실험할 수 있도록 해줬다.
당시 그와 정 교수가 함께 설계·제작했던 대표적인 실험설비가 '혐기성 소화조 실험장치'다. 장치 내부에 가축분뇨를 넣고 외부에 히터를 달아 항상 35℃를 유지해 따뜻한 공기를 공급하며, 유기물과 분해돼 발생하는 가스를 별도로 모아 그 가스양을 자동으로 측정하는 복잡한 공정의 실험 장치다.
아주대학교 대학원 조교 시절의 강인국 키나바 연구소장. 당시 지도교수에게 받은 설계도만 보고 두 달에 걸쳐 만든 '혐기성 소화조 실험장치'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인국 개인소장
원본보기 아이콘설계도만 보고 두 달 밤새워 가며 실험장비 만든 악바리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인 그는 "지도교수에게 설계도를 받은 그는 방학 때 두 달 동안 새벽부터 한밤까지 매달려 혼자 장치를 완성했다"면서 "교수님이 설계도를 주시면서도 기대는 하시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해외 일정을 마친 뒤 함께 만들려고 하셨는데 혼자 뚝딱 만들었더니 놀라셨다"고 회상했다.
그런 그에게 정 교수는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줬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 '혐기성 소화조를 이용한 돈분 처리 및 바이오가스 생산'은 아직도 인용 빈도가 높은 논문 중 하나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대학교에서 혐기성 처리 분야 연구실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 교수의 첨단 기술과 지식 전수는 그의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됐다. 정 교수가 설계하고, 그가 제작한 그 실험 장치는 전국의 대학에서 벤치마킹했고, 그의 후배들이 계속 사용했다.
폐기물 처리방식에는 공기 중 산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산화시키는 '호기성(好氣性)'과 산소와 접촉하지 않고 열을 가해 유기물을 분해하는 '혐기성(嫌氣性)' 두 처리방식이 있다. 그는 냄새도 많이 나고, 온도변화에 민감하며, 침전물 발생도 많아 보통의 연구자들이 꺼리는 혐기성 처리를 파고들었다.
강 소장은 "스승의 영향도 있었지만, 가축분뇨나 음식물쓰레기의 경우 혐기성 처리가 더 효율적이라고 확신했다"면서 "호기성 처리는 처리 후 대부분 버려지지만, 혐기성 처리는 퇴비와 고형연료, 바이오차, 바이오가스 등을 생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직원 역량에 딱 맞춘 업무지시 신기했다"…직장서 배운 현장 업무
지식과 기술을 학교에서 배웠지만, 현장을 배운 것은 회사였다. 현대엔지니어링 환경기술연구소에서도 신입연구원 강인국은 환경공학 분야에서 첫 연구원이었는데, 당시 소장은 그에게 무리한 업무를 지시하지 않았고, 딱 해낼 수 있을 만큼의 업무를 지시했다.
그는 "직원의 역량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업무를 지시한다는 게 신기했고, 저런 능력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말투와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배웠다"면서 "항상 현장을 지키는데 그때 배운 업무 스타일을 현장에 적용하면 큰 무리 없이 일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1996년 현대엔지니어링 환경기술연구소 과장 시절 5년간의 연구 끝에 '고농도 유기폐수 처리 방법 및 장치'를 개발한 공로로 현대기술상을 수상했다. 상금으로 5000만원이란 거금을 받았지만, 이보다 더 기뻤던 순간은 1991년 충북 옥천의 양조회사인 해태산업에 혐기성 소화조가 설치됐을 때다. 강 소장은 "그 순간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 이론과 기술이 처음으로 상용화된 그 시간과 장소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키나바와의 인연은 2019년 최강일 대표가 키나바를 창업할 때 그에게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하면서 시작됐다. 공기 없이 열분해를 통해 남은 유기 물질을 활용하는 '수열탄화(HTC)' 기술의 권위자인 최 대표와 혐기성 처리방식의 권위자인 강 소장의 결합이 키나바 성장의 열쇠가 된 것이다. 키나바의 플랜트는 수열탄화 반응 이후 남은 액을 혐기성 처리방식을 통해 고형연료와 바이오차, 바이오가스 등을 생산한다.
2020년 2월 키나바는 캐나다 메트로밴쿠버에서 열린 'G2E 컨소시엄' 행사에서 부스를 운영했다. 이 행사에서 현지 업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최강일 키나바 대표, 오른쪽 끝이 강인국 연구소장이다. 강인국 개인소장
원본보기 아이콘"지금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고 밤늦도록 공부한다."
강 소장은 국내 환경분야의 개척자인 만큼 연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지금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고, 밤늦도록 공부하며, 풀리지 않는 공정에 대한 해법을 고민한다. '혐기성소화조를 이용한 고농도 양돈폐수 처리에 관한 연구', '혐기성 여상 공정에 의한 고농도 유기산업폐수 처리' 등 수십여편의 논문도 이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주요 기업과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에 '혐기·호기 겸용 고효율 생물반응조 개발', '멤브레인 결합형 질소·인 제거 겸용하수 처리공정 개발', '플랜트용 음식물쓰레기 자원화기술 및 설비 개발' 등의 이론을 접목해 수많은 매립장과 오폐수처리장 시설을 설계·제작했다.
이런 그의 활약에 힘입어 2026년부터 2만5000두 이상 양돈농가에 '혐기성 소화조' 설치가 의무화되는 '유기성 폐자원을 활용한 바이오가스 생산 및 이용 촉진법'이 시행된다. 대학원 연구실에서 설계·제작된 실험장비가 실제 양돈농가에서 사용하는 필수 환경설비로 사업화된 것이다.
양돈농가에서 혐기성 소화조를 가동해 모은 바이오가스는 발전기를 돌리는 데 사용된다. 현재 전남 구례군에서 'G2E센터@구례'의 플랜트 제작 막바지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강 소장은 "시험가동 중인 G2E센터@구례에서 하루 100t의 돼지분뇨를 처리하는데, 이로 인해 생산된 바이오가스로 발전기를 돌린다면 시간당 400㎾h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는 시간당 13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기량이다.
전남 구례군 'G2E센터@구례'에서 '혐기성 소화조'와 '바이오가스 저장 탱크'를 설명하는 강인국 키나바 연구소장. 강 소장 뒤편의 커다란 탱크가 바이오가스 저장 탱크다. 구례=김종화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의식 변화 절실"
이렇게 기술이 사업화되면 한없이 보람을 느끼지만, 그 과정은 험난하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님비(NIMBY)'를 넘어 내가 사는 지역권 자체에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바나나'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사업화는 더 힘들어졌다. 환경시설은 혐오시설이란 인식 때문에 시설부지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강 소장은 "최근 가축분뇨나 음식물쓰레기 등 유기성폐기물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 생산기술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지만, 님비현상으로 인한 과다한 비용 등으로 사업화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면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민의식의 변화와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좌우명은 "유연한 사고와 생각의 실천"이다. 연구자로서 닫힌 사고는 극히 위험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원료가 되고, 그렇게 떠오른 아이디어는 곧바로 이론에 접목해보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러면서 후배 직장인들에게는 "자기 분야에서는 확실한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이든 손을 댔으면 끝장을 봐야 한다. 훗날 다른 일을 하다가도, 필요할 경우 지금 일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수의 한마디
친환경 기술을 사업화하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발생하는 문제점을 그때그때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엔지니어는 목표치가 100인데 120을 달성하려고 덤비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그런데 90이라도 제대로 해놓고 100을 채워 나가자는 마음으로 일하면 일이 매끄러워지고, 실수도 줄어든다. 욕심을 버리면 사고도 유연해져 해결법도 쉽게 떠오른다.
구례=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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