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내 아버지가 아무 이유 없이 죽은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시리아 반군의 승리로 53년간 대를 이어온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의 철권통치가 무너지자, 시리아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환호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들도 일제히 환영했다. 다만 시리아 내 혼란을 틈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확장 등 향후 불확실성을 둘러싼 우려도 쏟아진다.
반군 승리에 시리아 국민들 '환호'…"알아사드, 모스크바 도착"
일간 가디언은 8일(현지시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발 기사를 통해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하자 수백명의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환희하고 있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광장을 찾은 한 여성은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며 "내 아버지, 내 형제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독재 정권하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딸은 "이제 우리 아버지가 아무 이유 없이 죽은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은 버려진 군복으로 가득 차 있었고, 반군을 막기 위해 동원된 시리아 정부군 탱크는 텅 비어있었다고 보도했다. 모하메드 씨는 다마스쿠스를 향해 운전하면서 "더 이상 검문소도, 뇌물도 없다"고 미소 지었다. 파티메 씨는 "마치 꿈 속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매체는 "반군조차도 다마스쿠스를 그렇게 빨리 점령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고 덧붙였다.
CNN방송 역시 "국경지대에서 시리아 국민들이 모여 알아사드의 축출을 축하하고, 음식을 나눠주고,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면서 "이들은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가장 위대하다)고 외치고 있다"고 전했다. 시리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거리로 뛰어나와 독재정권 붕괴를 환호하는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
반군이 수도를 점령하기 직전 다마스쿠스를 떠난 것으로 알려진 알아사드 대통령은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로 피신한 것으로 파악됐다. 타스·스푸트니크 통신 등은 이날 크렘린궁 소식통을 인용해 알아사드 대통령과 가족이 러시아에 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알아사드와 그 가족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며 "러시아는 인도주의적 이유에 따라 그들의 망명을 허가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란과 함께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온 대표적인 국가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쿠데타로 권력을 잡아 1971∼2000년 장기 집권한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았다. 알아사드 부자의 독재 철권통치기간은 무려 53년에 달한다. 특히 알아사드 대통령은 내전 발발 이후 화학무기까지 동원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시리아 내전에서 50만명 이상의 시리아인이 사망했고 그중 20만명은 민간인이라고 보도했다. 국외로 망명, 피난한 시리아인은 수백만 명에 달한다.
반세기 철권통치, 갑자기 무너진 배경엔 '우크라·레바논 전쟁'?
과거 '아랍의 봄' 때도 살아남아 철권통치를 이어온 알아사드 정권이 갑자기 무너진 배경에는 시리아 내전에서 정부군을 지원해온 러시아, 이란의 지원 축소가 손꼽힌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가자지구 전쟁 등에 따른 '부메랑 효과'라는 평가다.
이란 배후세력인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 역시 시리아를 지원해왔으나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레바논으로까지 전선이 확대하면서 시리아를 지원할 여력이 축소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날 알아사드 정권 붕괴 소식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 ‘악의 축’에서 핵심 고리였던 알아사드 정권이 몰락했다. 중동에 역사적인 날"이라며 "이는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해온 이란과 헤즈볼라에 타격을 가한 데 따른 직접적인 결과"라고 자평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CNN방송은 '우크라이나와 레바논 전쟁이 시리아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기사를 통해 "시리아 반군이 일주일 만에 놀라운 진군을 이룬 것은 의도치 않은 두 전쟁의 결과"라면서 "알아사드의 급변한 운명은 실제 시리아에서 이뤄진 게 아니라, (레바논) 베이루트와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가디언 역시 별도의 기사에서 "10월7일 시작된 가자 전쟁의 도미노 효과가 여전히 중동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며 "시리아의 다음 상황은 불확실하지만, 이란은 명확하다. (이란 주도의) 저항의 축이 붕괴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알아사드는 이란의 가까운 동맹이지만 이란 정부는 최근 그를 버리고 시리아를 포기했다"고 평가했다.
국제사회 '환영 속 우려'…혼란 틈타 IS 극단주의 세력 부활 경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독재 정권 붕괴를 환영하면서도 급변하는 중동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그간 시리아 내전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러시아, 이란 등 권위주의 세력 간 대리전 구도로 진행돼왔음을 고려할 때,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NYT는 별도의 분석 기사에서 "시리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환호가 일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깊다"며 "갑작스러운 독재정권 몰락이 놀라운 일인 만큼 다음 예측도 어렵다"고 꼬집었다.
런던에 위치한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은 NYT에 "이처럼 빠르게 이뤄지는 상황에서 절차를 정립하고 원활한 (권력)전환을 이루는 것은 어렵다"며 "이러한 속도, 불확실성은 시리아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거버넌스와 관련,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많은 위험을 내포한다"고 짚었다. 국제위기그룹의 라히브 히겔 선임 분석가 역시 "시리아인들이 보여주는 기쁨을 이해한다. 축하할 순간"이라면서도 "하지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NYT는 "아마도 가장 시급한 질문은 반군 세력이 얼마나 빨리 혼란스러운 권력 공백을 방지할 수 있을지, 대통령 축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지금 그들의 계획이 무엇인지"라고 강조했다. 또한 "반군 연합이 얼마나 멀리까지, 얼마나 빠르게 국가 전체에 대한 통제력을 확장할 수 있을지도 안정 회복에 있어 중요한 요인"이라며 "다만 대통령 축출 후에도 반군 연합이 단결을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2003년 사담 후세인의 오랜 통치를 끝낸 이후의 이라크와 비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바이든 "리스크와 불확실성의 순간, 경계 늦추지 않을 것"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오랫동안 고통을 받던 시리아 국민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의 순간"이라면서도 "우리 모두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질문하는 가운데 이것은 리스크와 불확실성의 순간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IS가 공백을 틈타 역량 재건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미국은 시리아 내 IS캠프 등을 표적으로 삼아 12차례의 정밀 공습도 감행한 상태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시리아 반군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경계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분명히 반군 그룹의 일부는 끔찍한 인권 유린 및 테러 전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시리아 반군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 조직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주도하고 있다. CNN방송은 미국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이 HTS의 상당수가 IS와 강력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군이 승기를 잡은 이후 쿠르드족, 친튀르키예, 극단주의세력 등 분산된 세력들 사이에서 주도권 장악을 위한 제2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우려점으로 꼽힌다. 미 국무부는 이날 오스틴 로이드 국방부 장관이 터키 국방장관과 통화하고 시리아 상황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언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역시 "잔혹한 아사드 독재 정권은 무너졌다"면서도 "기회를 주지만,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경계했다. 그는 모든 소수자를 보호하는 시리아 국가 재건을 위해 유럽이 적극 나설 것임도 확인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야만의 상태가 마침내 무너졌다"며 "불확실한 이 시기에 평화와 자유, 단결을 기원하고, 프랑스는 중동 지역 모두의 안보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적었다.
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온 이란은 반군이 승리를 선언한 이날 "시리아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파괴적인 간섭이나 외부의 강요 없이 전적으로 시리아 국민의 책임이어야 한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이란 외무부는 성명에서 "이란은 최근 사태 속에 시리아의 통합과 주권, 영토 보전을 존중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한다"며 "군사적 갈등을 즉시 멈추고, 테러를 방지하며 모든 시리아인을 대표할 포용적인 통치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시리아 모든 계층을 포함하는 국가적 대화가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시리아에서 포용적 과도정부를 수립하려는 노력을 지지한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시리아 상황에 대한 비공개 특별 회의를 9일 개최할 것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요청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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