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의 대혼돈이었다. 사문화된 줄 알았던 '비상계엄'이 현실이 되리라고 본 이는 없었다. 그만큼 충격이 컸고, 그만큼 분노도 컸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전개에 국민은 가슴 졸이며 밤을 지새웠다. 계엄군의 국회 진입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마치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시곗바늘이 뒤로 돌아가도 한참 뒤로 돌아갔다. 국민은 물었다. 도대체 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문은 '오래된 단어'로 가득했다. 앞부분에 민주당의 감사원장 탄핵 시도, 내년도 예산안 단독처리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방점은 뒷부분에 찍혀 있는 것 같다.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 행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 '만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 등등. 비상계엄 해제 담화에서도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말했다. 맥락이 같다.
야당을 '반국가 세력' '체제 전복 세력'으로 보는 이러한 인식의 근원은 무엇일까. 대통령이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런 편향된, 잘못된 인식이 '비상계엄'이라는 비상사태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군을 동원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다행스러운 것은 군과 경찰의 성숙한 대응이다. 국회 본청에 진입하거나 국회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시민들과 물리적으로 충돌하거나 집기가 손상된 경우가 있었으나 결정적인 것은 없었다. 시민 의식도 돋보였다. 국회 앞에 몰려든 시민들은 담장을 넘거나 바리케이드 등을 물리력으로 무너뜨리고 국회에 진입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질서를 유지했다.
이번 사태는 윤 대통령이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든 것과 같다. 돌이켜보면 정도는 다르지만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 해병대원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한 사례가 떠오른다. 그때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왜 이 전 장관을 대사로 임명했는지 정치권 안팎에서 비판이 거셌다. 이번처럼 대통령실 내부에서 전혀 걸러지지도 않았다. 두 사례는 대통령의 독단, 독선이 갈 데까지 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차이라면 이번이 좀 더 극적이라는 점이다.
정국 상황은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오늘이 됐다. 윤 대통령이 2년 반 남은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걸었던 일말의 기대는 사라졌다. 인내심은 임계점을 넘었다. 대통령의 보호막은 사라졌다. 의지할 곳이 없다. 집권당 국민의힘은 대통령과 거리두기에 나섰다. 검찰과 군의 기류도 바뀔 수밖에 없다. 변화가 불가피한 정국이 됐다. 야당이 주장하는 하야가 아니면 탄핵이 힘을 받게 됐다. 헌정사에 불행한 일이지만, 변화는 이미 굴러가기 시작했다. 현실화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벽이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 생각해볼 때가 됐다.
소종섭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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