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11시47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상공에서는 헬기 소리가 들렸다. 현장에 모인 이들은 당황했다. 혹시라도 군인이 발포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섞여 나왔다. "아직 본회의 시작 전이에요! 막아야 해요!" 군인의 국회의사당 본관 진입을 막기 위해 책상을 옮기던 이들이 소리쳤다. 순식간에 국회 보좌진은 총을 메고 야간투시경이 달린 헬멧을 쓴 군인 앞을 막아섰다.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군인과 국회 보좌진이 뒤엉켜 몸싸움을 벌였다.
비슷한 시각, 국회 본회의장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누군가 "지금 보좌진이 싸우고 있다고요!"라고 소리치자 우 의장은 절차를 틀려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4일 오전 1시, 우 의장은 의사봉을 들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은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본회의장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본관에서는 국회의 계엄령 해제 요구 결의에 발맞춰, 계엄 군인들이 물러갔고, 사람들은 손뼉을 쳤다.
시간을 조금만 앞으로 돌려보자. 국회는 극한의 대치 정국이었다. 야당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해 감액만 반영된 예산안을 처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탄핵 움직임이 있었다. 국회의 대치 상황과 관련해 윤 대통령이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통령 역시 책임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임기 2년7개월 동안 거부권만 30회 행사했다. 자기 부인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에도 거부권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암초에 부딪혔다. 예산안은 법률안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번만큼은 윤 대통령이 야당과 소통하고 필요하다면 읍소라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택한 방식은 공포 정치였다. 공수부대는 헬기를 타고 국회로 왔고, 군인은 일사불란하게 양 갈래로 나뉘어 국회의사당 본관 정문과 후문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대표 사무실을 골라 유리창을 깼다. 일촉즉발의 위기, 자칫하면 현대사의 비극이 재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국회 본청에 머물던 사람들은 계엄 해제가 선포되기 전까지 공포에 떨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윤 대통령은 임기 동안 수없이 들은 이야기가 있다.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윤 대통령 대응은 소통과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국무회의 소집 등 계엄령을 발동하기 위한 법적인 절차를 제대로 밟았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저버린 선택을 했다면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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