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에크렘 얄츤다으 개인전 '댄스 위즈 핸즈'
30년간 2만5000자루 붓으로 캔버스 채운 '수행'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갤러리는 올해 마지막 전시로 튀르키예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에크렘 얄츤다으(Ekrem Yalcindag)의 개인전 ‘댄스 위드 핸즈(Dance with Hands)’를 개최한다.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최초로 열린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그의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선 예술적 명상과 깊은 사유를 제안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은 얄츤다으의 상징적인 화폭과 마주한다. 대표작 ‘색에서 색으로’는 한눈에 보기에는 밝고 경쾌한 무지개색의 그림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꽃잎 모양의 형상이 수없이 겹쳐진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꽃잎 하나하나 세필 붓을 통해 그려졌고, 각 꽃잎에는 스무 번 이상의 붓질이 지나갔다. 30여년간 2만5000자루의 붓을 통해 캔버스를 채워온 수천, 수만 개의 꽃잎은 얄츤다으가 천착해온 반복성과 숭고함의 흔적이다.
얄츤다으의 작품에는 세포, 지문, 꽃잎과 같은 자연적 모티프가 가득하다. 이는 단순히 아름다움의 구현이 아니라, 세상에 결여된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작가의 의식적 수행에 가깝다. 그의 그림 속 반복적이고 정교한 패턴은 현대적 만다라를 연상시키며, 관객에게 명상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요소는 작품 속 ‘원’의 이미지다. 얄츤다으는 동심원이나 절대적인 원을 반복적으로 그리며, 동양적 자연관과 서구적 형이상학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의 원은 20세기 러시아 추상미술의 거장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원’에 대한 오마주로 해석되기도 한다. 말레비치가 구축한 미니멀리즘의 철학을 100년 뒤 다시 재해석한 얄츤다으의 원은, 단순한 도형을 넘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다.
얄츤다으의 작품은 동서양의 예술적 요소를 융합한 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는 서양 회화의 유화 기법과 실크스크린을 동양의 서예적 붓 터치와 결합해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연작 중 일부는 실크스크린 작업 중 실제 나뭇잎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자연과 인간, 문명과 원시성을 하나의 화폭에서 통합하려는 작가의 철학을 반영한다.
또한, 색채에 대한 그의 실험은 단순한 미학적 탐구를 넘어선다. 얄츤다으는 색을 장식적 요소가 아닌 독립적 존재로 보고, 색이 가진 본질적 에너지와 정서를 화폭에 담아냈다. 캔버스 위에서 감지되는 미묘한 색의 변화는 관객에게 감각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 관객에게 얄츤다으의 세계를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두 문화 간의 예술적 대화를 제안한다. 같은 기간 터키 세빌 돌마치갤러리에서는 한국 작가 김현식의 개인전이 열린다. 두 전시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 서로의 문화적 정체성과 미학적 가치를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전시는 28일까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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