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국회 예산 심사 지적
회의록 안 남는 '소소위' 심사 문제
근본적 해법은 국회 예산심사 손봐야
국회는 최근 감사원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지난 26일 감사원이 공개한 ‘국고보조금 편성 및 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에는 국회 예산심사 과정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명목상 지적 대상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였지만, 실제로 칼날을 겨눈 곳은 국회였다. 감사원이 정부 부처도 아닌 국회를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감사원은 관계 법령에 따라 지방정부로 넘어간 사업에 (투입되면 안 되는) 중앙정부 예산이 투입된 점 등을 지적하며, ‘투명성’이 부족한 예산안 심사 과정을 문제 삼았다. 특히 문제가 된 지점은 예산안 심사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국회 ‘증액 심사’ 였다.
올해는 약간 다르지만, 그동안 증액 심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회 위원장과 여야 간사, 기재부 예산실장 정도의 비공식적인 협의체인 ‘소(小)소위’에서 논의됐다. 여기서도 안되면 여야 원내대표 등이 참여하는 2+2, 3+3 협의기구에서 담판을 통해 예산안을 결정했다. 비공식적인 막후 협상 단계에 접어들면 책임 소재를 따져볼 ‘회의록’은 어디에도 없다. 국회와 정부의 밀고 당기기 속에서 예산이 주먹구구로 정해지다 보니, 여야 힘센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이 일종의 타협책이 되곤 했다. 감사원은 기재부가 헌법이 행정부에 부여한 증액동의권을 통해 국회를 말렸어야 했는데, 안 말렸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감사원은 주먹구구식 증액 심사 과정에 대해 좀 더 투명한 절차를 갖추고, 근거자료도 남길 것 등을 요구했다.
감사원의 이같은 지적은 국회 예산심사의 틀을 흔들고 있다. 그동안 예결위는 십여명 남짓 여야 의원을 예산안조정소위(소위) 위원으로 삼아 예산안을 심사하는데, 이들은 주로 지역 대표성을 고려해 각 당에서 선정된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소위 위원들을 지역 예산 ‘해결사’ 취급을 했는데, 올해 심사에서는 지역 관련 민원 사업이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 대해 예결위와 국회는 자존심이 단단히 상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민의를 예산안에 반영하려 한 것인데, 감사원이 이를 지적한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감사원의 ‘사과’ 등이 거론되는 것도 이런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는 일련의 상황이 발생한 원인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국회는 매년 예산안 심사 때마다 번번이 ‘깜깜이 심사’ 지적을 들었다. 해마다 11월마다 예결위가 부랴부랴 예산심사에 나섰음에도 소소위 등의 비공식 협의기구에 의지하는 까닭은 여야 간 이견조율도 있지만, 정상적 심사 방식으로는 예산안을 처리할 수 없는 ‘시간 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그 결과 비공식적인 막후 흥정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예산안 심사를 담당했던 이들은 예산안이 처리된 뒤에는 "지금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곤 했다. 하지만 예결위원장도, 간사도 매년 새롭게 바뀌는 탓에 똑같은 무대, 똑같은 의상에 배우만 바뀐 채 똑같은 연극이 상영됐다. 9000여개에 달하는 사업을 십여일 남짓 기간 심사하는 것은 '부지런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박정 예결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이 방대한 양을 심사하려면 한 두세 달은 봐야 한다"며 "예결위가 1년 내내 열려 그때그때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불투명한 예산심사에 제동이 걸린 이때, 국회는 자존심만 세울 게 아니라 무대를 새롭게 바꾸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나주석 정치부 차장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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