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 후 상속'→'상속 후 공제'로 30년 만에 견해 변경
유족연금 수급권자 아닌 자녀들 부분 파기환송
사망한 피상속인의 상속인들이 상속받는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유족연금을 공제해야 할 경우 실제 유족연금을 지급받는 상속인이 상속받은 손해배상채권에서만 공제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상속분에 따른 상속이 이뤄진 뒤에 손해에 대한 중복적인 전보를 막기 위해 연금 등 별도의 급부를 받는 상속인이 상속받은 손해배상채권에서만 공제를 하는 이른바 '상속 후 공제' 방식을 채택한 판결로 30년 만의 대법원 판례 변경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교통사고로 사망한 대학교수의 배우자가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에 따라 유족연금을 지급받는 수급권자였는데, 상속인인 배우자와 자녀들이 가해자 측에 청구할 손해배상채권(일실 퇴직연금)에서 유족연금을 먼저 공제한 뒤 나머지 금액을 세 명의 상속인이 나눠서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전체 손해배상채권을 세 명의 상속인이 각자의 상속분에 따라 상속한 뒤 유족연금 수급권자인 배우자만 자신이 받을 손해배상채권에서 유족연금 수급액을 공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앞서 대법원은 1995년 사립학교교직원 연금이 문제된 사건에서 중복 지급을 막기 위해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이 준용하는 '공무원연금법'상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 전체에서 유족연금 등을 공제한 나머지가 공동상속된다는 취지의 '공제 후 상속' 방식을 취한 바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오늘 이 같은 종전 대법원 판례의 입장을 변경했다.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신모씨의 아내 홍모씨와 자녀 A씨, B씨가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공제 후 상속' 방식에 따라 손해배상액을 산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판결 중 A씨와 B씨의 일실퇴직연금 일시금 부분을 파기하고 홍씨의 상고와 및 A씨, B씨의 나머지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심으로서는 망인의 일실 퇴직연금일시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 전체에서 직무상유족연금을 공제하면 나머지가 없으므로 상속이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일실 퇴직연금일시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이 상속인들에게 각자의 상속분 비율에 따라 공동상속된다고 본 다음 그중 수급권자가 상속한 손해배상채권에서만 그 직무상유족연금을 공제하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심의 판단에는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직무상유족연금 등의 공제 순서와 그 인적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또 재판부는 "환송 후 원심은 직무상유족연금을 공제하기 전에 그 수급권자가 누구인지를 심리하면서 수급권자의 범위와 순위 등을 잘 살펴 직무상유족연금 공제의 대상과 범위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과실비율에 대한 상고이유에 대해서는 "망인의 과실비율을 20%로 산정해 가해차량의 책임비율을 80%로 제한한 원심판단을 수긍할 수 있다"며" 원심의 판단에 과실 판단을 그르쳐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직무상유족연금을 공제하는 순서와 그 인적 범위가 문제된 사건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이 타인의 불법행위로 인한 직무상 재해로 사망해 발생되는 망인의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은 상속인들에게 각자의 상속분 비율에 따라 공동상속되고, 그 후 수급권자가 지급받는 직무상유족연금은 그 수급권자가 상속한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을 한도로 해 그 손해배상채권에서만 공제된다(상속 후 공제 방식)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와 달리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 전체에서 유족연금 등을 먼저 공제한 후 나머지 손해배상채권이 상속인들에게 각자의 상속분 비율에 따라 공동상속된다(공제 후 상속 방식)'는 취지로 판단한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다"고 덧붙였다.
신씨는 2016년 9월 30일 오후 충북 단양군의 한 2차로 도로의 1차로로 오토바이를 타고 주행하던 중 2차로에서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해 유턴을 시도하는 택시에 오토바이 앞부분을 받쳐 현장에서 사망했다.
신씨의 아내 홍씨와 두 자녀들은 가해 차량에 관해 자동차공제계약을 체결한 공제사업자인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7억5800여만원(홍씨)과 7억3600여만원(A·B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상속 후 공제' 방식을 적용, 조합연합회가 홍씨에게 1억8700여만원, A씨와 B씨에게 각각 3억3600여만원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신씨의 사망으로 받지 못하게 된 퇴직연금을 홍씨와 두 자녀들이 나눠 상속한 뒤,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상 1순위 수급권자인 홍씨에 대해서만 이미 공단으로부터 지급받은 유족연금 유족연금특별부가금 약 4600만원과 유족연금 1억4900여만원을 공제한 것.
이 같은 방식에 따르면 홍씨는 퇴직연금은 전혀 받지 못했고, 두 자녀들은 각각 약 4300만원의 퇴직연금을 받게 된다. 여기에 위자료 등을 합산한 금액이 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액이다.
피고 연합회 측은 사망한 신씨의 퇴직연금일시금에서 홍씨가 지급받은 유족연금과 유족연금특별부가금을 공제하면 신씨의 일실 퇴직연금일시금은 남아있지 않으므로, 홍씨뿐만 아니라 A씨와 B씨도 이를 상속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면 2심 법원은 1994년 대법원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부산시립교향악단 단원 사건에서 채택한 '공제 후 상속' 방식을 적용, 1심 법원이 A씨와 B씨에게 지급하라고 한 손해배상액 중 약 3억원 부분에 대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사학연금법은 공무원연금법을 준용하기 때문에 이 판례가 신씨의 사례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직무상유족연금의 수급권자가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까지 상속하게 된다면 수급권자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퇴직연금과 같은 목적의 급부를 이중으로 지급받게 되므로, 직무상유족연금은 수급권자가 상속한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공제하는 것이 형평의 이념에 부합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재판부는 "그러나 수급권자가 아닌 상속인들은 상속받은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을 지급받더라도 같은 목적의 급부를 이중으로 지급받는다고 볼 수 없으므로, 수급권자가 아닌 상속인들이 상속한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직무상유족연금을 공제할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례의 경우 실제 유족연금을 받는 건 배우자인 홍씨뿐인데, 직계비속으로 유족연금을 받지 못하는 상속인들이 공동상속할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먼저 유족연금을 공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수급권자가 아닌 상속인들이 상속한 망인의 손해배상채권과 직무상유족연금 수급권은 귀속주체가 서로 상이해 상호보완적 관계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직무상유족연금의 지급으로 수급권자가 아닌 다른 상속인들이 상속한 손해배상채권에 대해 전보가 이뤄졌다고 볼 수 없고, 만약 이를 공제한다면 손해배상채권의 전부 또는 일부가 박탈당하게 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공제 후 상속' 방식과 같이 손실전보의 중복성을 강조해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직무상유족연금의 공제 범위를 넓게 인정한다면,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 재원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면제시키는 결과가 되고 수급권자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한 사회보장법률의 목적과 취지가 몰각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이유로 재판부는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었던 피상속인이 타인의 불법행위로 사망했을 때, 망인의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이 일단 상속인들에게 공동상속되고, 그 후에 유족연금을 지급받는 상속인에 대해서만 수급한 유족연금을 공제해야 한다('상속 후 공제' 방식)고 결론 내렸다.
마지막으러 재판부는 기존 공무원연금법이 문제된 사건에서 '공제 후 상속' 방식을 채택했던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은 급여의 종류, 급여의 사유, 급여액 및 급여의 제한 등에 관한 사항에 대해 '공무원연금법'과 '공무원 재해보상법'의 해당 규정을 그대로 준용하는 체계를 갖고 있으므로, 공무원연금법 등과 해석을 달리 하기 어렵고, 대법원은 근본적·최종적으로 적용되는 준용대상 규정의 해석·적용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이 법질서의 정합성에도 부합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이 준용하는 '공무원연금법'상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 전체에서 유족연금 등을 공제한 나머지가 공동상속된다는 취지의 '공제 후 상속' 방식으로 판단한 대법원 93다57346 판결 등은 이 판결의 견해('상속 후 공제' 방식)와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한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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