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계에 '몇 명을 증원해야 돼. 근거는 이래'라고 정직하게 말했다면 의료계는 '증원하지 않아도 돼. 근거는 이래'라고 답했을 겁니다."
박형욱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원장은 18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 '정부의 의료농단 저지 및 의료정상화를 위한 의협 비대위원장 인터뷰'를 열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점잖게 말했다. 이전의 의협 지도부의 거친 언사와 비교하면 합리적인 출발로 보였다.
박 위원장은 이날 의협 비대위 구성을 확정하고 전체 15명 중 40%인 6명을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배정했다. 이로써 의료계는 의료사태 발생 9개월 만에 정부가 요구하는 '단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다만 우려는 여전하다.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은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패키지 백지화 등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전공의의 비대위 참여를 의료사태 해결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박 위원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를 설득해야 한다. 그는 비대위원장에 출마하고 "한국 의료의 미래를 책임질 사직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옳은 이야기지만 그가 의료계와 사회의 선배로서 가진 경험과 통찰력까지 잃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는 예방의학과 전문의인 동시에 변호사이고, 청와대 행정관으로 보건복지 업무를 직접 담당했다. 의사이자 법·행정 전문가로서 그는 의료계와 정부의 입장을 모아 접점을 만들 수 있는 드문 인물이다. 의료계의 주장이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하려면 정책적으로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정부의 정책이 의료계에 설득력을 발휘하려면 메시지를 어떻게 다듬어서 전달해야 하는지도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를 양측에 설득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역할이다.
여기에 더해 박 위원장은 의료 발전을 위해서는 '국민'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의료계에 이해시켜야 한다. 그는 지난 15일 아시아경제와 가진 인터뷰 내내 '국민'을 강조했다. 그는 사직 전공의와 잘못된 의료시스템의 현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고, 사직 전공의도 똑같은 '국민'임을 알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국민'이 현재 의료사태와 의료계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의료계, 특히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도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이 참여한 의협 비대위를 의료계의 단일한 목소리로 인정하고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정부가 열린 태도로 의협 비대위를 대하는 것이 대화 시작의 첫걸음이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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