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이자 변호사', 靑 행정관 거친 의료정책·법·행정 전문가
"내년 의대 정원 조정 아직 가능…세종·도쿄대 등 전례 살펴야"
"여야의정협의체 참여 논의 하겠지만 현 상황에선 의미 없을 듯"
지난 13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 선거에서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단국대 의대 교수)이 당선됐다. 그는 내년 초 차기 의협 회장 선출 때까지 의협 수장으로서 의료사태 대응을 지휘한다.
1968년생인 박 비대위원장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다. 예방의학과 전문의인 동시에 변호사다. 사법연수원(37기)을 수료하고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 행정관을 역임했다. 의협과 보건복지부가 참여한 의료현안협의체에도 의협 측 협상단 위원으로 참여했다. 현재는 의협 최고 의결기구인 대의원회 부의장과 국내 의료 관련 각종 학회를 이끄는 대한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카페에서 박 위원장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의협 비대위 운영 방안과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의정갈등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당선 직후 "대화를 위해 대통령과 정부가 시한폭탄을 먼저 멈춰야 한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우선은 내년 의대 정원 증원이다. 중단돼야 한다. 이외에도 현재 수많은 시한폭탄이 작동 중이다. 당장 내년 1월에 의사 배출이 안 된다. 공보의와 파견의, 군의관 등 운영까지 어려움이 생기는 단기적인 폭탄이 터지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 경영난과 남아있는 의사들의 사직도 문제다. 적자가 가중되고, 남아있는 의사들도 피로에 못 이겨 사직하고 있다. 의대생 교육 역시 문제다. 온라인 교육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제대로 된 교육은 절대 불가능하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시한폭탄인데, 정부는 지금 시기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위험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지도 않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4일 이미 치러졌다. 이 상황에서 내년 의대 정원 재조정이 가능한가?
▲정부의 의지가 있으면 가능하다. 세종대와 일본 도쿄대 사태를 돌아보면 충분히 가능함을 알 수 있다. 1990년 당시 학내 봉기로 60%가 넘는 세종대 재학생이 유급당하자 정부는 신입생 모집을 200여명만 허용했다. 당시 정부가 제시한 명분은 '대량 유급에 따라 신입생 정원을 다 모집할 경우 정상적인 수업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지금 상황도 똑같다. 현재 정부는 교육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대학 총장이나 대학 운영자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의대에서 직접 의대생을 교육하는 교수들이 컨센서스를 모아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수험생이 있으니까 일단 입학시키고, 나중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수험생들에게도 더욱 비극적인 일이다.
-현재 상황에서 비대위원장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인가?
▲우선 여러 의료계 직역이 비대위 안에서 규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차기 집행부의 행보도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피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대위 차원에서 먼저 급격한 변화에 나서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한 부분은 차기 집행부가 해결할 문제로 보인다.
-의료사태 해결의 데드라인이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늦으면 늦을수록 해결이 복잡해지고 더욱 장기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의학교육과 같이 의정 협의를 유무를 떠나 이미 망가진 분야가 있다.
-의료계의 여야의정협의체 및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참여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의료계 구성원의 의견을 물어 비대위에서 결정할 사안이다. 다만 정부가 입장 변화는 없이 그간의 행동이 오히려 성과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이라면 대화가 의미 있을까 싶다.
-사직 전공의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수립할 계획인가?
▲비대위가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의견을 존중해 잘 반영해 나가야 한다. 선배 의사들이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은 후배 의사들에게 "이게 정답이야"식으로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비대위부터 그들의 생각을 묻고, 존중해나간다면 협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15명 이내로 꾸릴 비대위 구성에서도 2~3명 정도 사직 전공의를 참여시킬 계획이다.
-일각에선 사실상 사직 전공의들이 의협을 수렴청정하는 구조라고 비판한다.
▲사직 전공의들의 이야기를 듣고 존중하며 결정을 해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을 수렴청정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의료사태 해결이 아닌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듣고 존중하는 것은 수렴청정 받는 게 아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7대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복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데.
▲비대위에서 결정할 문제다. 개인적으론 그들이 잘못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국민들에게 구체적인 내막을 설명하는 것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국민들은 사직 전공의들이 왜 7대 요구안을 고수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의 기본권이 왜 전공의들에게만 적용이 되지 않는지 등 전공의들이 처한 현실과 그 의미를 국민들께 잘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사태 장기화와 관련해 정부 대책의 어떤 부분이 가장 문제라고 보는가?
▲지금 정부는 암 환자의 암만 제거할 수 있다면 환자가 죽어도 괜찮다는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의대 증원 등과 관련해 의료계와 협의를 하지 않았는데 마치 한 것처럼 국민을 선동해 의료계를 불통 집단으로 낙인찍었다. 제시한 의대 증원 근거도 정부에게 유리한 일부 수치와 연구에 그친다. 이 또한 아주 비과학적으로 계산했다. 특정 시점에 대한 부족분만을 평균으로 계산해 내놓고 그것을 과학적 진리라고 정당화하면서 의사들이 부당하게 반대한다고 하고 있다. 사직할 자유가 있는 전공의들이 사직했더니 상상도 못 할 조치와 낙인을 찍기도 했다. 증원 이후 의대 교육에 대해서도 사전에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정답을 정해놓고 끼워 맞추는 모양새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면 다 카르텔이고 '나쁜 놈들이다'는 식으로 낙인을 찍어왔기에 의료사태가 지금까지 이어졌다.
-의료계가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온다. 다양한 단체가 내는 제각각의 목소리를 어떻게 규합할 계획인가?
▲직역에 따라 처한 상황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각자의 이해를 중심으로 의료사태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든 문제의 근원은 근본적인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각 직역이 처한 현실을 설명하고, 의료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컨센서스를 만들 필요가 있다. 지금까진 나무의 뿌리를 보지 않고 저마다 나뭇가지만 보고 싸워왔다. 뿌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다면 규합이 가능하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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