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부진 철강업계 악재 겹쳐
수출 늘려 강달러 이점 챙기기
정유·석화 환차손 부담 늘어
車업계, 수출로 환율 수혜 기대
원·달러 환율이 연일 고공행진하자 기업들의 내년 경영 시계가 안갯속에 빠졌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찾아올 경제·통상 정책 변화에 이어 불확실성이 더욱 늘게 됐다. 기업들은 환율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장단기 변동에 따른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다. 재무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헤지(hedge) 전략을 가동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정유와 석유화학, 철강 업계는 '강달러(원화 약세)' 현상이 장기화할 것인지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수입에 활용하는 내추럴 헤지 전략으로 손실을 줄이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지난 8월 '블랙먼데이' 이후 3개월 만에 2400선을 하회한 15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2.9원 오른 1408원에 개장했다. 강진형 기자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유 수입은 달러로, 수출도 역시 달러로 하기 때문에 환율에 따른 영향은 일정부분 상쇄된다"면서도 "통상적으로 본다면 정유사들은 생산품의 50~60% 정도만을 수출하고, 수입 물량이 더 많기 때문에 환차손 부담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강달러가 이어지면 기름값이 올라 서민, 국가 경제에 부담이 높아지고 이는 정유제품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상황을 주의하고 있다.
업황 부진이 이어지는 석유화학업계도 환율 변동이 반갑지 않다. 다만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의 경우 환율 오르면 제품을 일정부분 싸게 팔아도 판매가는 올라가는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화학의 경우 수출 비중이 50~60%에 달한다.
철강업계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입 부담이 커지는데 최근 철강재 수요 부진으로 판매가격에 전가하기도 쉽지 않아서 이중고에 빠졌다. 포스코는 현재 내년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환율 변수가 커졌다. 내수 판매 물량을 줄이는 대신 수출 비중을 늘려서 고환율 이점을 챙기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원자재 구입, 해외 설비투자 비용이 많은 배터리 업계도 원·달러 환율이 올라 재무 부담이 크다. 특히 올해가 해외 설비투자 정점을 찍는 시기라 외화부채가 크게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3분기 외화부채가 6조8000억원에 달하는데 작년 말 4조2000억원 대비 크게 늘었다. 환율이 10% 올라가면 2388억원 가량 순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업계도 영업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류비를 달러로 부담한다. 강달러 추세가 이어지면 원화환산 비용이 늘어난다. 대한항공 3분기 영업비용 3조6222억원 중 연료비는 1조1662억원으로 3분의 1에 달한다. 기준 환율을 달러당 1319.6원으로 잡았는데 달러당 1400원을 적용할 경우 산술적으로 연료비가 3분기 대비 6%, 즉 700억원 이상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대표적인 외화벌이 업종인 자동차는 고환율 수혜 품목으로 꼽힌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동차·부품 수출액은 939억달러, 수입액은 228억달러로 무역수지 흑자는 711억달러 수준이다. 원화 가치가 1원만 낮아져도 장부상 수익이 700억원 이상 더 생긴다는 얘기다. 현대차·기아 경영실적 발표를 종합하면 올해 들어 영업이익이 늘어난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게 ‘환율효과’다.
현대차는 올해 1~3분기 영업이익 증감분 가운데 환율로 인한 증가분이 1조4380억원 수준이다. 같은 기간 기아는 1조770억원으로 집계됐다. 환율만으로 2조50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올해 1~3분기 두 회사의 합산 영업익은 21조원 정도로 앞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000억원가량 늘었다. 일회성 충당금을 반영하는 등 실적 악화 요인이 있었음에도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플러스 실적을 낸 셈이다.
전자업계도 환율 변동이 호재와 악재로 동시에 작용하는 만큼 상황 변화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호재로는 원화 가치가 낮아져 제품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수출 실적을 늘리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다만 통화시장 리스크가 커진 것으로 풀이되는 만큼 원자잿값 상승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도체·가전 업체 모두 달러로 구매하는 장비, 소재 원자잿값이 올라 생산비용이 소폭 늘 수 있다. 전자업계에서는 결제 과정에서 미 달러 외 통화를 다양화하고 물류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사업 변동성을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네덜란드, 일본, 미국 장비 반입과 반도체용 특수가스 등 소재 관련 비용이 늘 수 있다"면서도 "원화 약세로 수출에 유리한 측면도 있기 때문에 득실을 지금 예단하기는 어렵고 신중히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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