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틀 벗어난 무제한 회견 시도
때론 말실수 허용해야 진정한 소통
많은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낙제점으로 혹평했다. 여론조사에서 “기자회견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모두 70%를 넘겼다(에이스리서치-뉴시스, 한길리서치-쿠키뉴스, 조원씨앤아이-스트레이트뉴스).
그러나 이런 세평과는 다른 관점으로도 윤석열 기자회견은 조명될 수 있다. 회견을 중계한 방송 3사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이 3.7%에 그쳤다. 여론조사 응답자 가운데 회견을 시청한 사람은 10% 안팎이라는 얘기다. 응답자 다수는 회견을 안 봤으면서 “회견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한 셈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해도 지지하지 않는 선행 경향성’ 때문이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요즘 여론조사 응답이 70%대이니 그의 회견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그 수준으로 나온 것이다. 이 선행 경향성 이론에 따르면 여론조사 결과만으론 대통령 회견을 재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번 회견은 대통령의 진일보한 소통행위로 평가될 수도 있다. 그 근거는 140분에 달한 긴 진행 시간과 비교적 자유롭게 질문하게 한 진행 방식이다.
우리 정치권엔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다. 부적절한 말이나 언행일치에 반하는 말을 뱉으면 곤욕을 치른다. 이에 국가수반인 대통령들은 말을 적게 함으로써 말실수로 인한 권위 훼손을 줄이려 했고 그래서 기자회견 횟수와 시간을 최소화했다.
윤석열의 140분 자유 질의응답은 이러한 이전 한국 대통령들의 유교적 방어적 최소주의적 소통방식에서 벗어난 시도였다. 이 시도 자체는 평가받을만했다고 본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회견 발언에 대해 ‘대변인에게 반말하네’ ‘외신기자에게 무례하네’ ‘부인을 감싸네’ 등 다양한 혹평이 이어졌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끝장 변명” “동문서답” “일방적 잡담”으로 맹비난했다.
회견장에서 한 기자는 대통령의 사과가 두루뭉술해 사과받는 국민이 어리둥절할 것 같다고 질의했다. 질문 형식을 빌려 회견의 의미를 깎아내린 부정적 프레이밍이었다. 대통령의 답변이 아니라 이 질문이 화제가 됐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대통령이 피하고 싶은 일이 다 일어난 것이다. 대통령 발언엔 대국민 사과, 불법 공천개입 부인(否認), 제2부속실 설치, 김건희 여사 활동 중단, 인적 쇄신 착수 등 알맹이가 없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비등하는 비난 여론을 역발상으로 해석하면 우리의 대통령 기자회견 문화는 유교에 여전히 포획된 듯하다. 말을 잘못하면 조선시대 사화(士禍)처럼 엄청나게 비방하고 여론재판을 해 결국 말을 적게 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에게 언론·국민과 활발히 소통하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환경에서 대통령들은 기자회견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는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불통 대통령, 제왕적 대통령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눌변임에도 도어스테핑(출근길 즉흥문답)과 이번 무제한(실제론 140분) 기자회견을 감행했다. 이후 지지도는 하락·정체했다. 그러나 기존 틀에서 벗어나 말을 많이 하는 방식에 도전한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도 사람인지라 장시간 말하다 보면 적절한 말, 유용한 말도 하고 부주의한 말, 기대에 못 미치는 말도 한다. 실수를 허용해야 대회가 열린다. 괜찮으니 더 말하라고 북돋워 주면서 대통령이 부담 없이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줄 때 대통령과의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허만섭 국립강릉원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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