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선택 2024]
향후 4년간 미국 백악관의 주인으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확정되자 세계 각국에서는 축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자국과의 관계를 과시하는 그 속내는 제각각이다. 당장 불확실해진 우크라이나 지원, 중동 외교정책 등을 두고 유럽에서는 분열이, 중동에서는 혼란이 확인되고 있다. 대규모 무역전쟁이 예고된 중국으로서도 마냥 축하하긴 어렵다. 한층 더 강력해진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이 또 한 번 세계를 뒤흔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美 차기 대통령에 쏟아지는 축하 전화·성명
CNN 등 현지 언론을 종합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6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대선 승리를 축하했다. 이번 통화는 각국 지도자들이 여러 공식·비공식 채널을 동원해 트럼프 당선인과 접촉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이에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각각 트럼프 당선인과 공식 통화를 나눴다. 특히 이스라엘 총리실과 프랑스 엘리제궁은 이들이 대선 결과가 확정된 후 트럼프 당선인과 가장 먼저 전화한 세계 정상 중 하나라는 점을 부각했다. 두 정상은 1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상대적으로 '브로맨스'를 과시했던 인물들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춤 코드를 보여온 극우 성향의 정치지도자들도 일제히 반색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탈리아와 미국은 흔들리지 않는 동맹"이라고 강조했고,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미 정치 역사상 가장 큰 복귀"라고 강조했다. 내각 외무부 장관이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소시오패스' 등 막말을 한 것으로 확인되는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 역시 "역사적 승리를 축하한다"며 "가장 가까운 동맹"이라고 양국 관계를 강조하는 성명을 냈다. 노동당 소속인 스타머 총리는 뉴욕을 찾은 지난 9월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식사하며 관계 구축 노력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약 12분간 트럼프 당선인과 통화해 "대승을 거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한미일 협력과 한미 동맹,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역시 조기에 만나 미일 관계를 한층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자고 강조했다. 며칠 전까지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했던 브라질의 좌파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서 "민주주의는 국민의 목소리로 항상 존중돼야 한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을 축하했다. CNN방송은 "각국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축하하고 있다"며 소식통을 인용해 현재 트럼프 당선인과 그의 측근들이 누가, 언제 연락을 취하는지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고 보도했다.
분열된 유럽, 불안한 우크라이나, 혼란스러운 중동
이처럼 각국 정상들이 당선 축하 메시지와 함께 양국 관계를 과시하고 있지만, 이들의 속내는 편치 못하다는 분석이다. AP통신은 "트럼프 1기는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을 모욕하고 소외시켰다"면서 "또 한 번 세계를 뒤흔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캠페인 과정에서 대규모 관세 전쟁을 예고한 상태다. 재임 시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던 중국은 물론, 유럽과의 오랜 대서양동맹까지 뒤흔들었던 관세 카드를 재차 꺼내 드는 것이다.
더욱이 EU의 경우 우크라이나 지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분담금 문제, 기후변화 등의 현안을 두고 주요국 지도자와 트럼프 당선인 간 입장차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레슬리 빈자무리 책임자는 "유럽인들의 실존적인 우려는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유럽 안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국의 나토 방위 약속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며 "미국이 유럽을 위해 그 자리에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나마 1기 행정부 당시 관계 강화에 나서고자 했던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 통화에서 EU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이러한 현안에 함께 협력하자고 강조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서양 동맹에 회의적인 트럼프 당선인의 성향을 고려해 자체 주권과 국방을 강화하는 '자강론'을 주장해온 인물이다. AP통신은 "나토는 긴장하고 우크라이나는 불안해한다"면서 "유럽에서는 어떤 지도자들이 더 열광적으로 축하했다. 깊은 분열"이라고 주목했다. 당장 지원이 끊길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당선인의 '힘을 통한 평화' 접근 방식을 환영한다면서도, 우크라이나에 공정한 평화를 실질적으로 더 가까이 가져올 수 있는 원칙을 강조했다.
중동은 한층 혼란스럽다. 네타냐후 총리가 즉각 환영한 반면,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계속 싸우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들의 배후 세력이자 '저항의 축' 핵심인 이란으로서도 결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인 2018년 예루살렘이 자국 수도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또한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3년 만에 일방적으로 파기하며 이란에 무거운 경제 제재를 부과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이스라엘과의 협력관계가 한층 강화되며 대이란 강경책이 예고된 상황이다. 1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가자지구 전쟁,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전쟁 국면에서도 차기 미 행정부가 이스라엘을 더 전폭 지지할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 여파 우려하는 각국
이 밖에 관세발 무역전쟁, 대만을 둘러싼 양안 갈등 등도 세계 각국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로 손꼽힌다. 베이징 칭화대 국제안보전략센터 소속인 다웨이 소장은 "기회보다 도전이 더 많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필립스 오브라이언 세인트앤드루대학 교수는 일본, 한국, 대만, 호주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 동맹국들이 "방위 문제에서 미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북·남미 국가들도 보호주의무역발 관세 위협 등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국의 미국발 관세 회피기지로 떠오른 멕시코의 경우 트럼프 당선인으로부터 취임 시 미국-멕시코-캐나다 간 무역협정인 USMCA 재협상, 대규모 관세 부과 등의 위협을 이미 받은 상태다. 다만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국민들에게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과거 트럼프 당선인에게 "약하다", "부정직하다" 등 비난을 받았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X에 "두 나라의 더 많은 기회, 번영, 안보를 위해 함께 일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썼다.
AP통신은 "트럼프 첫 임기 동안 보호무역주의 여파를 받은 이웃 국가들은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아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는 축하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양국 관계가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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