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팀 개발 웨어러블 로봇, 하반신 마비장애인 보행 가능케 해
국제 대회 우승 목표
공경철 교수 "초격차 입증 할 것"
김승환 씨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걸을 수 없다. 일어서서 아이를 번쩍 안아 들어줄 수 없던 그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입는 로봇이 그와 아이를 연결해줄 수 있는 고리다.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인 김승환 연구원이 24일 어린 아들(왼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개발한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보행 시연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김승환 씨가 24일 입는 로봇 즉, 웨어러블 로봇인 '워크온슈트F1(WalkON Suit F1)'을 입고 일어서는 모습을 그의 아이도 지켜봤다. 로봇은 스스로 다가와 아빠의 몸에 딱 맞게 입혀졌다. 승환 씨가 손을 댈 필요도 없었다. 이어 아무런 도움 없이 그가 일어났다. 지켜보던 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빠가 휠체어를 타는 모습을 봐야 했던 아이도 아빠가 당당히 일어서는 모습을 봤다. 아빠는 로봇을 입고 힘차게 걸었다.
걷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아빠는 봉투를 들고 좁은 복도를 걸어 의자에 앉았다 일어났다. 승환 씨가 자신을 평범한 아빠로 만들어준 로봇과 함께 국제 대회에 나가기 위해 준비한 훈련이다. 이 대회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이 주최하는 '사이배슬론'이다.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총장 이광형) 기계공학과 공경철 교수(엔젤로보틱스 의장) 연구진이 하반신마비 장애인용 웨어러블 로봇의 새로운 버전, '워크온슈트 F1'(WalkON Suit F1)을 24일 공개했다.
이 로봇은 공 교수 연구진이 하반신 마비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로봇의 신기원을 열고자 개발해온 회심의 작품이다. 휠체어에서 내릴 필요도 없고, 타인의 도움도 없이 바로 착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입는 로봇은 웨어러블 로봇 기술의 초격차를 입증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 교수는 "F1이라는 이름 자체가 일상 용이라기보다는 경기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기 위함을 뜻한다"라고 말했다. 공 교수팀은 2020년 취리히 연방대학이 주최하는 장애인용 로봇 대회인 사이배슬론(Cybathlon) 대회의 웨어러블 로봇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제3회 사이배슬론에 출전한다.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이날 시연에서도 워크온슈트 F1은 사이배슬론 종목의 기준을 당당히 달성했다.
이번 로봇은 하반신마비 중에서도 중증도가 가장 높은 ASIA-A(완전마비)레벨을 대상으로 한다. 공 교수가 창업한 엔젤로보틱스를 통해 상용화돼 건강보험이 적용돼 사용할 수 있는 보행재활로봇 엔젤렉스 M20과는 형태와 목적이 다르다. 기존 제품들이 뇌줄증 환자들의 안전한 보행을 위한 것이었다면 워크온슈트F1은 보행이 불가능한 이들이 타인의 도움 없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 로봇 개발에서 이미 달성한 보행속도 등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대신 입혀주는 로봇이 아닌 스스로 입을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로봇 개발에 참여한 박정수 카이스트 박사는 "다른 로봇들은 연속적인 보행에 집중했지만 우리는 첫발을 떼는 것과 혼자 입을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워크온슈트 F1은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기술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 타인의 도움 없이 로봇을 바로 착용할 수 있도록 후면 착용 방식이 아닌, 전면 착용 방식을 적용했다. 장기간 앉아서 생활했던 착용자가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섬세하게 배려했다. 로봇이 급작스럽게 착용되면서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이 없도록 섬세하게 설계했다.
또한 로봇을 착용하기 전에는 마치 휴머노이드처럼 스스로 걸어와 착용자에게 다가온다. 무게중심을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기능을 적용해서, 착용자가 로봇을 잘못 밀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기능도 구현됐다. 휴머노이드와 웨어러블 로봇을 넘나드는 워크온슈트 F1의 디자인은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박현준 교수가 맡았다.
웨어러블 로봇 본연의 기능도 대폭 개선됐다. 직립 상태에서는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지팡이 없이 수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균형 제어 성능이 향상됐다.
카이스트 연구팀이 로봇 설계의 기초를 마련했고 엔젤로보틱스는 살을 보탰다. 로봇의 핵심부품인 모터와 감속기, 모터드라이버, 메인 회로 등을 전부 국산화했으며, 모터와 감속기 모듈의 출력밀도는 기존 연구팀의 기술에 비해 약 2배(무게당 파워 기준), 모터드라이버의 제어 성능은 해외 최고 기술 대비 약 3배(주파수 응답속도 기준) 향상됐다.
특히, 고가의 상위제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고급 모션제어 알고리즘을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모터드라이버의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기술이 대폭 향상됐다. 이외에도 장애물 감지를 위한 비전, 인공지능 적용을 위한 AI보드 등이 탑재됐다.
공 교수는, “워크온슈트는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 기술의 결정체”라고 설명하면서, “워크온슈트에서 파생된 수많은 부품, 제어, 모듈 기술들이 웨어러블 로봇 산업 전체의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해외 경쟁 로봇과 큰 격차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공 교수는 최근 엔젤로보틱스의 최고경영자(CEO)직을 내려놓고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다. 공 교수는 "마음이 통하는 적임자를 찾아 경영을 맡기고 기술 개발에만 주력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 교수는 카이스트 교원 창업기업인 엔젤로보틱스가 상장 초기 기업가치 1조원 대에서 최근 1/3로 축소된 것에 대해 "다시 유니콘(시가총액 1조원이상)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했다. 그는 "웨어러블 로봇의 다양한 미래에 대해 이미 머릿속에 많은 구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의 재활지원 웨어러블 로봇에 그치지 않고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슈트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을 선보이겠다고 자신했다. 공 교수는 사이배슬론 주최측이 자신에게 다음 대회의 대회장을 맡을 것을 제의해왔다고 밝혔다. 그만큼 공 교수팀의 실력을 해외에서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연구에 참여한 팀원들의 사기도 상당했다. 김승환 연구원과 함께 주장으로 사이배슬론 대회에 출전하는 박정수 카이스트 연구원은 "지난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만큼 이번 대회에서는 순위 경쟁보다는 기술적 초격차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라며 "향후 창업을 생각하고 있다. 교수님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다고 했다"고 말했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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