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갤러리, 11월 16일까지
카펫 연작·탈과 가면 등 신작 35점 공개
"1만시간의 법칙 믿어"
"낯설고 서투른 그림이지만 진심 담아 작업"
"매일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루틴'을 지키며 작업했다. 마침 올해 촬영 일정이 없어, 전력투구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첫 개인전 이후 어느덧 15년 차, '화가' 하정우의 행보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개인전 13회에 이르는 꾸준함으로 단단하게 다져졌다. 그런 그가 대형화랑 학고재에서 단독 전시를 개최한다. 학고창신(學古創新·옛것을 배워 새것을 만든다)의 이념에 맞게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하는 전시 기획이 돋보이는 이곳에서, 전업 작가가 아닌 배우의 개인전은 이례적 사건이다.
전시는 11월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에서 진행된다. 전시 제목 ‘네버 텔 애니바디 아웃사이드 더 패밀리(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는 “가족 외의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정우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대부’의 명대사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전력투구'해 완성한 신작 35점을 선보인다.
앞서 16일 전시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정우는 "대학을 졸업하고 불투명했던 내일을 버티기 위해 그림을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나 신났고, 그 시간만큼은 나를 위로해주는 시간이었다"며 지난 작업을 회상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는 그는, 2013년 영화 '허삼관'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아 극도의 불안에 시달릴 당시 촬영지였던 전남 순천의 숙소 벽에 캔버스 천을 걸어놓고 매일 밤 선과 그림을 채워 넣으며 요동치는 감정을 달래곤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2010년 처음 개인전을 열었다. 자랑스럽게 내세울 것(그림)은 아니지만, 시간과 열정이 쌓여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거창한 계획 없이, 그저 그림 그리는 시간이 자신을 위로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하정우는 "흘러가는 대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특히, 작품 개봉이 아닌 전시 개막을 앞두고 기자 앞에 처음 선 그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전시를 열었지만, 이번 전시 제안을 받고 감회가 더 특별했다"며 이번 전시에 대한 남다른 소회도 밝혔다.
거침없는 색과 선명한 원색으로 주변 인물 또는 일상의 사물을 소재로 작업해 온 작가 하정우의 작업 스타일은 이번 전시에서 '카펫과 탈'로 집중된 면모를 보인다.
카펫 시리즈에는 그가 영화 '비공식 작전' 촬영차 모로코에 5개월간 체류할 당시 경험이 녹아있다. "모로코 현지에서 방문한 모든 공간에 화려한 무늬의 카펫이 깔려있던 풍경이 유독 인상 깊었다"는 그는 귀국길에 현지에서 유명한 카펫 20여개를 구입한 뒤, 그 위의 문양을 그리며 작업에 착수해 이를 캔버스로 옮겨 시리즈로 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검은색 마커로 가늘게 그은 수백, 수천개의 선은 같은 패턴으로 얇고 뾰족하게 뻗어나가 하나의 무늬를 이루고, 그 무늬가 합쳐져 또 하나의 패턴을 구성한다. 하나의 물감이 갖는 고유의 색이 좋아 절대 색을 섞어 쓰지 않는다는 그는 이번 전시에서도 밝고 강한 원색 위주의 작업을 선보인다.
탈과 가면 연작은 배우 하정우를 떠오르게 한다. 학고재의 요청으로 구상한 이 시리즈는 진짜 얼굴을 가릴 때 쓰는 탈, 그리고 주어진 역할에 따라 그때마다 다른 탈을 쓰고 일하는 '배우'의 의미를 담아 작업한 도상으로 전시장 입구 200호 대형 작품을 통해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15년의 활동, 13회의 개인전, 촬영 스케줄이 없는 시간은 작업실에 머물며 그림에 집중했다는 그의 고백에도 '배우 유명세로 전업 작가도 아닌데 미술 전시를 한다'는 일각에서의 비판은 여전히, 또 꾸준히 그를 향하고 있다.
하정우는 "2010년 처음 개인전을 열고 15년간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안 좋은 이야기가 98% 정도 될 것 같은데, 그런데도 저는 할아버지가 됐을 때, 70대가 되면 제 그림을 다시 잘 봐주지 않을까…"라며 "작가로서 인정받는 것이 현재 내게 큰 의미는 아니고, 다만 지금 조금씩 깊이를 쌓아가면 어떤 평가든 받는 것이라 생각하고 매 순간 '1만 시간의 법칙'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배우로 활동하는 것도 선택받아 하는 것이라, 이번 전시도 제가 운 좋게 선택받았다고 생각한다. 계속 이 작업을 이어가고 깊이를 쌓아간다면, 분명히 나중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않을까. 죽기 전까지는 계속 그림을 그릴 것 같다. 내 절반은 배우, 절반은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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