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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르포]아세안, 단결 구호 사라지고 커지는 중국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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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부 아세안 잇는 中 고속철
라오스·캄보디아·태국에 영향력
中자본·인재 몰려 경제 종속 심화
해양부 아세안 인니·필리핀은
‘일대일로’ 사업 AIIB 수혜국
정상회의서 남중국해 문제 실종

매년 개최되는 ‘아세안 정상회의’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정치 이벤트 가운데 하나다. 과거에는 ‘빈국(貧國)의 연합’이라는 조롱도 있었지만, 이제는 가장 성공적인 지역 공동체이자 가장 끈끈한 정치세력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강대국도 인구 7억과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 되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라오스에서 열린 정상회의에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여하진 않았지만, 이 둘을 제외한 전 세계 주요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들이 대거 몰리며 큰 성황을 이뤘다. 특히 아세안을 향한 한·중·일 3국의 구애 경쟁은 잘 알려진 일이다. 매년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이들 3개국 정상은 거의 빠지질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매년 한 차례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다.

◆라오스 회담=모든 정치적 회의체에서 의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여러 권한 가운데 어떤 의제를 테이블에 놓을지 정할 권리가 핵심이다. 올해 의장국은 라오스. 10개국 아세안 회원국은 알파벳 국가 이름 순서대로 의장 역할을 보장받는다. 지난해는 인도네시아, 내년은 말레이시아가 된다. 아세안에서 인구와 경제력을 기준으로 보면 인도네시아나 태국, 말레이시아의 영향력이 커야 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모든 회원국에 동등한 권리를 준 것이 아세안의 특징이기도 하다.


리창 중국 총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중국 정상회담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리창 중국 총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중국 정상회담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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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의장국은 여러 이유로 중요하다. 조직의 의제, 응집력, 외부 파트너와의 상호 작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의장국의 막강한 영향력을 처음 입증한 사례가 바로 2012년의 캄보디아다. 당시 남중국해를 향한 중국의 탐욕에 아세안 회원국 부부분이 크게 분노했고, 국제사회를 향해 남중국해에 대한 아세안의 역사적인 권리를 주장해야 할 최적의 시기였다. 실제로 미얀마와 라오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아세안 국가가 남중국해에 일정 부분 연고권을 갖고 있기에, 당연히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합동 규탄 성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의장국 캄보디아는 이를 끝내 거부했다. 당시 훈센 총리는 장기 집권의 피로감 탓에 국제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만큼은 압도적인 지원 정책을 펼치며 훈센 정권의 확고부동한 후견인 역할을 자임했다. 이 때문인지 캄보디아는 의장국 지위를 백분 활용하여 공동 성명서를 무산시키는 산파 역할을 하며 논란을 몰고 온 것이다.


◆친미·친중 분열=이후 10년 가까이 아세안은 친미와 친중 세력으로 확연하게 쪼개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년 아세안 정상들에게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여기엔 지리적 배경이 있다. 아세안은 크게 대륙부 아세안과 해양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아세안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아시아 대륙의 동남쪽 영역을 칭하는데, 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은 아시아 대륙에, 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인도네시아-필리핀 등은 바다 쪽에 접한 영토가 많다. 자연스레 대륙 쪽은 중국의 영향력이 거셀 수밖에 없다. 해양부의 필리핀에 남중국해는 사실상의 생명줄인 셈이고, 지역 맹주를 꿈꾸는 인도네시아는 ‘남중국해’를 발판 삼아 아세안의 단결을 촉진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2012년 공동성명 무산 이후 남중국해와 중국의 경제적 침략 문제는 지속해서 아세안 정상회의 테이블에 올랐지만 제대로 된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해양부와 대륙부 아세안 간의 치열한 눈치 싸움도 있었지만, 중국의 대(對) 아세안 로비가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중국의 포용책이 바로 일대일로(BRI: Belt and Road Initiative) 사업의 실질적인 금융 인프라인 아시아인프라 투자은행(AIIB: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이다. 미국 주도의 월드뱅크와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항하기 위해 2016년부터 중국이 주도하는 개발금융으로, 특히 아세안 쪽 인프라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에 가장 적대적이던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AIIB의 가장 큰 수혜국 가운데 하나다. AIIB는 인니의 도시 교통 시스템, 관개 현대화, 수력 발전과 같은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포함해 여러 인프라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했다. 필리핀 수도의 홍수 조절 및 배수시스템을 지원하는 ‘메트로 마닐라 홍수 관리 프로젝트’도 여기서 투자한다. 아세안의 저개발국인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의 농촌 인프라 프로젝트 역시 AIIB가 특별하게 신경을 쓴다.


◆반중 의제 사라진 라오스=라오스는 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내륙 국가다. 바다와 접하지 못해 경제 개발 동력이 부족하고, 중국과 메콩강 유역을 공유하고 있어 중국과의 교역량이 절대적으로 크다. 2021년 개통된 쿤밍-비엔티안을 잇는 중국 고속철도는 라오스를 비롯한 대륙부 아세안에 사실상 중국의 영향력의 쐐기를 박은 사건으로 평가된다. 중국 자본과 인재들이 라오스-캄보디아·태국으로 물밀듯이 쏟아지면서 이들 국가 경제의 중국 종속이 심화한 것이다.


아세안의 경제 대국 태국도 이제는 중국 없이는 경제가 휘청일 판국인데, 인구가 750만 명에 불과한 라오스의 처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라오스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특판품이 고속철을 타고 중국으로 팔려 가는 상황. 이 때문에 올해 의장국인 라오스 주재의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는 사실상 언급도 힘든 상황이 되었고, 아세안 국가 가운데 오로지 필리핀 정도가 외롭게 ‘남중국해 문제’로 남았다.

남중국해 문제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고민의 핵심은 보다 중립적이고 모호한 ‘기후 변화’ 이슈가 차지했다. 기후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은 절박한 이슈임에는 확연하지만, 아직도 경제 성장에 시급한 아세안 국가들의 응집력을 모으기에는 힘에 부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는 달라진 회원국 내부 정치 상황도 맞물려 있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중심성을 외치던 조코위 대통령이 물러나고 군부 출신 쁘라보워 체제로 교체를 코앞에 두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안와르 총리 역시도 철저하게 ‘미·중 갈등’ 속 묘한 줄타기를 감행 중이다. 태국과 베트남 역시 경제 실용주의가 최우선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필리핀’과 ‘싱가포르’를 주요 행선지로 삼아 이들과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킨 것은 뚜렷하게 해양세력에 힘을 싣기 위한 행보로 비친다.


아세안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한국에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아세안의 중요성에 대해 "세계 5대 경제권으로 우리나라의 제2위 교역대상이자 중요 협력 파트너"라며 "올해 9월까지 대(對)아세안수출은 846억 달러로 전년 대비 6.6% 증가하면서 10개월 연속 수출 플러스를 견인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호재 아시아비전포럼 사무국장


정호재 아시아비전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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