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임기만료로 인한 공석 상태
헌법소원 선고까지 헌재법 제23조 1항 효력 정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헌법재판의 심판정족수를 7명으로 정한 헌법재판소법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해당 조항의 위법성은 본안심리를 통해 판단해야겠지만, 가처분을 기각했다가 나중에 해당 조항의 위헌성이 확인돼 종국결정에서 청구가 인용됐을 때 발생할 불이익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가 청구가 기각됐을 때 발생할 불이익보다 훨씬 크다는 이유다.
헌재는 14일 이 위원장이 헌재법 제23조 1항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헌재가 이날 효력을 정지시킨 헌재법 제23조(심판정족수) 1항은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는 심판정족수(심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재판관 최소 인원)에 관한 규정이다.
헌재는 주문을 통해 "헌재법 제23조 1항 중 헌재 재판관이 임기만료로 퇴직해 재판관의 공석 상태가 된 경우에 적용되는 부분의 효력은 헌법재판소 2024헌마900 헌법소원심판청구사건의 종국결정 선고 시까지 이를 정지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이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다투기 위해 낸 헌법소원 사건의 결론이 날 때까지 재판관의 임기만료로 인한 공석 상태의 경우에는 해당 조항이 적용되지 않도록 효력을 정지한다는 의미다.
헌재는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는 이유에 대해 "헌재법 제23조 1항이 신청인의 재판청구권 등을 침해하는지 여부는 본안심판에서 심리를 거쳐 판단될 필요가 있고, 3명의 재판관이 2024년 10월 17일 퇴임하면 위 조항에 의한 기본권침해 발생이 현재 확실히 예측된다"며 "따라서 이 사건 가처분신청은 본안심판이 명백히 부적법하거나 이유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제했다.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을 받은 신청인은 헌재의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되는데, 헌재법 제23조 1항에 따라 사건을 심리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신청인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신청인으로서는 헌재법 제23조 1항으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손해를 입을 위험이 있고, 3명의 재판관 퇴임이 임박한 만큼 손해를 방지할 긴급한 필요도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가 본안청구가 인용됐을 때의 불이익과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가 나중에 본안청구가 기각됐을 때 발생할 불이익을 비교형량한 뒤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가처분을 인용하더라도 이는 의결정족수가 아니라 심리정족수에 대한 것에 불과하므로, 공석인 재판관이 임명되기를 기다려 결정을 할 수도 있다. 다만 보다 신속한 결정을 위해 후임 재판관이 임명되기 전에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조사를 하는 등 사건을 성숙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가처분신청을 기각하면, 그 후 본안심판의 종국결정에서 청구가 인용되더라도 이러한 절차를 제때에 진행하지 못해 신청인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은 이미 침해된 이후이므로 이를 회복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헌재는 "임기제 하에서 임기만료로 인한 퇴임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임에도 재판관 공석의 문제가 반복해 발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라며 "7명의 심리정족수에 대한 직무대행제도와 같은 제도적 보완 장치도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이 사건에서 가처분을 인용한 뒤 종국결정에서 청구가 기각됐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보다 가처분을 기각한 뒤 청구가 인용됐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이 더 크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헌재는 해당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는 범위를 재판관의 임기만료로 인한 공석의 경우로 제한했다.
헌재는 "다만 이 사건에서는 재판관이 임기만료로 퇴직해 재판관의 공석 상태가 된 경우가 문제되는 것이고 신청인이 실질적으로 다투고자 하는 바도 이와 같으므로 헌재법 제23조 1항 중 재판관이 임기만료로 퇴직해 재판관의 공석 상태가 된 경우에 적용되는 부분에 한해 그 효력을 정지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지난 7월 31일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됐지만, 8월 5일 탄핵심판을 청구당했다. 그런데 헌재 재판관 9명 중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 등 3명의 헌법재판관이 오는 17일 임기가 종료된다.
이들 재판관의 후임은 국회가 선출해야 되는데, 아직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결국 18일부터는 재판관 6명만 남게 돼 헌재법 제23조 1항에 따르면 아무 사건도 심리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린다.
이에 이 위원장은 지난 10일 해당 헌재법 조항이 자신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면서 동시에 본안 사건의 종국결정이 선고될 때까지 해당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
헌재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함에 따라 헌재 마비 사태는 일단 피할 수 있게 됐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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