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도 AI 연구에 돌아가
AI 통한 기초과학 격차 극복 기대감
2024년 10월, 노벨상 주간이 전 세계 과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이번 물리학상과 화학상 수상자 명단에 인공지능(AI) 연구자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AI가 과학 연구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단순히 AI 기술의 발전을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 과학 연구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리학상은 딥러닝의 선구자로 알려진 제프리 힌턴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에게 돌아갔다. 힌턴 교수는 AI 연구의 대부로 불리며, 딥러닝 기술의 기반을 다진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물리학상 수상자 발표가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물리학 분야의 기초 연구에 주어지던 이 상이 AI 연구자에게 돌아간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화학상은 단백질 구조 예측 AI인 '알파폴드'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연구진들이 받았다. 알파폴드는 생명과학 분야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에 수십 년이 걸리던 단백질 구조 연구를 AI가 단 몇 시간 만에 해결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는 신약 개발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과학 연구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노벨상 수상은 AI가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과학 연구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AI는 기존 연구 방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발견의 지평을 열고 있다. 이는 과학계 전반에 걸쳐 연구 방법론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번 노벨상 수상 소식은 한국 과학계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은 그동안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과학 연구가 응용 분야에 치중돼 있고,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부족했다고 지적해 왔다.
그러나 AI의 등장으로 연구 환경이 급변하면서, 한국 과학계에도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과거에는 선진국들이 수백 년간 쌓아온 기초 연구 성과를 따라잡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AI를 활용해 그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특히 AI를 활용한 연구는 인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연구 인력이 부족한 한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과제가 있다. 우선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최신 AI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특히 AI 연구에 필수적인 고성능 GPU 확보가 중요하다. 정부는 최근 2조 원 규모의 국가 AI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을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위해서는 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장려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최근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받고 있지만, 실제 연구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민간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도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같은 기업들이 대학 연구진에게 컴퓨팅 자원을 지원하며 연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 노벨 화학상을 받은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상당한 컴퓨팅 자원을 지원받아 연구를 수행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산학 협력 모델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AI 시대의 도래로 과학 연구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도구라고 강조한다. 여전히 창의적인 아이디어 제시와 연구 결과의 검증은 인간의 몫이다. 따라서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인재 양성도 중요한 과제다. 단순히 AI를 다루는 기술적 능력뿐만 아니라, AI의 결과를 해석하고 새로운 가설을 세울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 노벨상 수상은 AI 기술의 양면성에 대한 논의도 불러일으켰다. 특히 물리학상을 수상한 제프리 힌턴 교수는 AI의 발전 속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AI의 안전성에 대해 언급하며, AI 기술이 인류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윤리적, 사회적 고려도 함께 이뤄져야 함을 시사한다.
한편, 이번 노벨상 수상 과정에서 한국 과학자의 기여도 있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화학상을 받은 연구팀에 한국인 과학자가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서울대 백민경 교수는 노벨상을 받은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 연구팀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며, 관련 연구에 기여했다. 이는 한국 과학자들도 세계적 수준의 연구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노벨상을 계기로 한국 과학계도 AI를 적극 활용한 연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AI를 활용한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한국이 약점으로 지적받아온 기초과학 분야에서 AI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AI는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이 연구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AI 활용 능력과 함께 기초과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그리고 창의적 사고 능력을 갖춘 인재 육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AI를 활용한 연구 결과의 신뢰성과 검증 가능성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AI가 도출한 결과를 어떻게 검증하고, 그 과정을 어떻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인지에 대한 과학계의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노벨상은 AI가 열어가는 새로운 과학 연구의 지평을 보여줬다. 동시에 한국 과학계에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제시했다. AI를 활용한 연구에 대한 투자와 지원, 창의적 연구 문화 조성, 산학 협력 강화 등을 통해 한국 과학계가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AI가 한국 과학의 새로운 도약대가 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박수민 PD soo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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