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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서울, 무안→대구…아이 가지려 '병원 뺑뺑이'[난임상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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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동네에서 시작한 난임 시술도 결국엔 서울行

편집자주합계 출산율 0.72명 시대. 서울의 유명 난임 병원 앞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동서고금 유례없는 저출산 추세가 무색할 정도다. 지난해 전국 난임 환자는 25만명. 모든 의료 인프라가 서울로 집중된 현실 속에서 아이를 갖기 위해 '원정 치료'를 떠나는 지방 난임 부부들은 오늘도 고통받는다.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지역 간 의료 불평등이 임신, 출산을 간절히 바라는 난임 부부들의 앞길을 막는다. 저출산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갖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지방 난임 부부의 원정 치료 실태를 들여다본다.

난임 시술에 나선 모든 부부의 가장 큰 바람은 ‘시술 한 번’에 곧바로 임신에 성공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난임 시술인 체외수정(시험관) 시술은 임신 성공률이 30~35% 정도로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보고돼 있다. 숫자는 숫자일 뿐 개개인의 신체 상태에 따라 성공 여부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 바로 난임 시술이다. 연령이 높을수록 난임 시술 횟수는 늘어난다. 국내 난임 부부의 시술 시도 횟수는 평균 7회다. 40대에서는 10회 이상으로 시술 경험률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병원을 오가는 지방 부부들은 시간이 갈수록 체력·심리·경제적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모습.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모습.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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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병원서 서울 전원 권고…"휴가철 5시간 도로에"

강원도 원주에서 서울로 원정 난임 치료를 다니는 오승현씨(가명·37)는 지난 7월 병원을 옮기며 가장 힘든 부분이 일정 조율이라고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결혼 4년 차인 그는 올해 2월 원주의 한 대학병원에서 처음 난자를 채취하며 본격적인 시험관 시술에 돌입했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이 병원에서 자궁 내 배아 이식까지 진행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지난 7월 서울로 병원을 찾아 이동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착상 전 유전검사(PGT·착상 전 배아 단계에서 유전질환·염색체 이상 유무 진단 후 정상 배아를 선별하는 검사)'를 했으면 좋겠는데 강원권 내에서는 할 수 있는 곳이 없으니 서울로 전원하라고 권유하시더라고요. 검사가 가능한 병원 리스트를 놓고 원주에서 이동할 때 가장 무리가 덜한 병원을 찾으려고 했어요. 처음 시험관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 서울로 다니면 힘들다고 해서 지역 내에서 시작했던 건데 결국 서울로 가게 됐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1년 난임 시술 여성 6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65.4%가 전원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임신이 되지 않아 옮기는 경우가 다수다. 전원 경험자 중 절반 이상은 거주 지역 밖에 소재하는 의료기관으로 옮겼다. 특히 거주 지역이 ‘제주/강원’인 경우 타지역으로 병원을 옮기는 비율이 80.0%로 가장 많았다. 전원한 병원의 지역을 보면 승현씨처럼 서울로 향하는 경우가 55.4%로 가장 많았다. 반면 서울 거주자의 타지역 소재 의료기관 전원 비율은 가장 낮았다.

원주→서울, 무안→대구…아이 가지려 '병원 뺑뺑이'[난임상경기] 원본보기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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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치료는 병원 일정을 잡는 것부터 영향을 준다. 개인 사업 중인 승현씨는 업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오후 2~3시쯤에는 원주에 도착해야 한다. 오전 7시 이전에 원주에서 출발, 서울서 오전에 진료를 마치고 직접 운전해서 귀가한다. 시외버스로는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왕복 200㎞ 거리를 쉬지 않고 내달린다. 생리 일정 등에 따라 갑작스럽게 병원을 방문할 상황이 생기면 난감했다. 한번 움직이는데 왕복 최대 5시간이 걸리고 주치의 진료 시간이 요일마다 달라 제때 병원을 방문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특히 지난 8월에는 휴가철이라는 변수가 등장하면서 평소보다 이동 시간이 2배로 늘어났다. 승현씨는 그달에만 난자 채취 준비를 하느라 병원을 총 아홉차례 방문했다. 많게는 일주일에 세 번을 병원 방문차 서울로 향했다. 왕복 5시간을 운전했으나 5분 만에 진료가 끝난 날에는 "정말 허무했다"고 소회했다. 시험관 과정 자체로도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는데 일정 조율을 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이동하는 과정은 어려움을 더했다.

원주→서울, 무안→대구…아이 가지려 '병원 뺑뺑이'[난임상경기] 원본보기 아이콘

비싼 난임 치료비에 교통비도 덤으로 추가됐다. 원주 병원에 다닐 땐 병원비만 생각했으나 서울 병원에 다니면서 왕복 유류비에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용까지 하루에 소위 '길에서 버리는 돈'이 총 7만~8만원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초 남편도 크게 다치면서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녔는데요. 저까지 난임 병원에 다니게 되니 '올해 서울 간 횟수가 평생 살면서 방문한 횟수보다 많은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아이 가지려 3년간 광주·분당·서울 거쳐 대구로

난임 치료 3년 차인 탁은애씨(42)는 최근 서울에서 다니던 대형 병원을 뒤로하고 대구에 입소문난 난임병원으로 전원했다. 거주지인 전남 무안에서 서울로 오가는 과정에 기차표 전쟁이 너무 치열해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또 2~3일 뒤 병원을 재방문 해야 할 경우엔 친척 집에 머물거나 호텔을 예약해 숙박하면서 숙박비도 만만찮게 들어갔다고 한다. 은애씨는 차로 3시간, 250㎞ 거리에 있는 대구까지 직접 운전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2021년 7월 처음 난임 치료를 시작한 은애씨는 현재까지 광주, 경기도 성남시 분당, 서울을 거쳐 대구로 임신을 위해 병원을 옮겨다니고 있다. 결혼 전 다발성 자궁근종 수술을 한 은애씨는 시험관 14회 차를 진행한 고차수 환자다. 처음엔 그도 거주지 인근의 대도시인 광주 난임병원을 먼저 찾았다. 거주지인 전남에는 시험관 시술을 시행하는 난임병원이 2곳, 광주엔 3곳(올해 3월 기준) 있다.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한차례 난자 채취를 진행했으나 공난포 3개만 확인하고 결국 경기도의 대형병원으로 전원했다. 옮긴 병원에서 첫 임신에 성공했으나 유산이라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시험관 시술에 사용한 주사기와 복용 약. 사진=정현진 기자

시험관 시술에 사용한 주사기와 복용 약. 사진=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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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도 난임 병원이 있죠. 그렇지만 저처럼 '극난저(난소 기능이 크게 떨어진 상태)'이거나 자궁질환이 있었던 사람이 그곳에서 하기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지방 난임 치료받는 사람들끼리는 그런 말도 해요. 지방에서 고차수까지 시술을 진행해도 안 되던 게 수도권으로 가면 한 번에 된다는."

은애 씨는 아이를 갖기 위해 식단 조절에 운동, 영양제 복용까지 안 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난임 치료에 모든 일상을 맞추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독서 논술 학원도 난임 치료와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했지만 시술 중 갑작스러운 일정이 생기면 학부모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고 한다. 서울로 병원을 다니면 휴강하는 일이 많아 손해도 컸다. 답답한 마음에 무안군, 전남도, 보건복지부 등 지자체와 정부에 직접 연락해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경제적인 부분이 제일 힘들어요. 시험관 한번 하면 기본이 300만~500만원 들거든요. 서민 월급에 누가 한 달에 500만원씩 넣는 게 가능하겠어요? 거기에 교통비, 숙박비, 영양제값에 각종 검사 비용까지 추가되죠. (지원이 늘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저출산 문제는 나라의 근간이 되는 문제잖아요. 고민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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