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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동업' 종지부…영풍·고려아연은 왜 갈라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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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영풍기업사 공동창업…순환출자 유지
서린상사 영풍 지분 영풍 2세가 인수하며 균열
고려아연 3세, 제삼자유상증자로 우호지분 확대

영풍 과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지분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를 선언하면서 촉발한 경영권 분쟁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공개매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영풍·MBK파트너스는 확보한 지분을 바탕으로 고려아연 이사회까지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장씨와 최씨 일가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한다. 반대로 고려아연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면 두 가문의 갈등은 새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장·최 가문 75년 동업의 역사

두 가문의 동업은 고(故) 장병희, 최기호 창업자가 1949년 영풍그룹의 모태인 영풍기업사를 공동 창업하면서 시작됐다. 창업 반년 만에 6·25전쟁으로 사업을 일시 중단했지만 피란지인 부산에서 회사를 다시 세웠다. 1970년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석포제련소를 지었고 4년 뒤 자매회사로 고려아연을 설립했다. 장씨 일가는 영풍을, 최씨 일가는 고려아연을 경영하면서 양사는 상호 지분을 보유하고 순환출자구조를 유지하며 관계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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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문의 관계는 공동창업주 2세인 장형진 영풍 고문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졌지만, 2017년 영풍이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 양사 간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고려아연→서린상사→㈜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는 장 고문이 서린상사 보유의 영풍 지분 10%를 직접 취득하면서 끊어졌다. 이로 인해 장씨 일가의 영풍 지배력이 강화했지만, 최씨 일가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이때부터 고려아연 계열 분리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영풍 "동업 정신 무시"vs고려아연 "환경 리스크"

오너 3세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권을 쥐면서 갈등은 표면화됐다. 차입 없이 보수적으로 경영해 온 영풍과 달리 최 회장은 이차전지 소재와 신재생에너지 등 신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한화, 현대차그룹 등 여러 협력사와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우호 세력을 확장해나갔고 영풍의 지분율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고려아연은 2022년 한화그룹 미국 계열사인 한화H2에너지USA를 대상으로 제삼자 유상증자를 단행, 한화H2에너지USA는 4717억원을 투자해 고려아연 지분 5%를 취득했다. 지난해에는 현대차 해외법인 HMG글로벌이 5272억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전체 지분의 약 5%를 확보했다. 이렇게 늘려나간 우호 세력 지분은 현재 16.4%에 달한다. 강성두 영풍 사장(경영지원실장)은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70여년의 긴 동업 관계로 경영 대리인을 믿으며 이사회에서 동의했지만 계속 반복되니 지배구조 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장형진 영풍 고문. [사진제공=각사]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장형진 영풍 고문. [사진제공=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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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고려아연은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골머리를 앓았다. 석포제련소에서 만들어진 황산을 온산항으로 수송하는 과정에서 영풍은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의 일부 황산 탱크와 파이프라인을 유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고려아연이 2021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를 위해 신설한 지속가능경영위원회에서 석포제련소 폐기물을 고려아연이 대신 처리해준다면 고려아연의 법적·ESG 리스크가 될 수 있어 거래 중단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은 "영풍은 석포제련소의 폐기물 보관장에 있는 유해 폐기물을 고려아연에 떠넘기려고 했다"며 갈등 원인이 영풍에 있다고 지적했다.


올 3월에 열린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갈등은 고조됐다. 배당금 상향을 요구하는 영풍과 국내 법인에도 제삼자 유상증자를 허용하도록 하자는 고려아연은 주총 전후로 설전을 벌였다. 주총 결과 배당안은 고려아연 뜻대로 유지됐고 정관 변경은 영풍 측이 원하는 대로 결론이 났지만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고려아연은 양사 동업 관계를 상징하는 수출 전문 계열사 서린상사의 이사회를 장악한데 이어 영풍과 황산취급대행계약도 파기하며 독립 행보에 속도를 냈다.


사모펀드까지 참전한 경영권 분쟁

영풍은 경영권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 회장의 독립적인 경영을 막겠다는 ‘벼랑 끝 전략’을 택했다. 지난달 12일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와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해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기로 했다. MBK파트너스가 영풍과 함께 고려아연 최대주주에 오른 것이다. 이후 이들은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다. 공개매수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고려아연의 실질적인 경영권은 MBK파트너스가 갖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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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은 공개매수 배경을 ‘최대주주의 경영권 강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이 취임한 이래로 영풍그룹 공동창업주의 동업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기 시작,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는 행위를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영풍은 공개매수와 동시에 고려아연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을 신청하며 최 회장에 둘러싸인 의혹을 제기하며 압박했다. 지난 25일에는 최 회장을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려아연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특히 중국계 자본을 업은 MBK파트너스와 손잡아 국가 기간산업이 해외로 넘어갈 위기라고 맹공을 펼쳤다.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취득하면 구성원과 지역사회 및 이해관계자들에게 막대한 피해가 갈 뿐만 아니라 투자수익 확보를 위해 전체 주주 및 구성원들의 이익을 반하는 독단적 경영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공개매수 종료까지 2거래일…경영권 분쟁 끝은

영풍·MBK의 공개매수 마감일(4일)까지 남은 일수는 단 2거래일이다. 영풍·MBK 측은 공개매수가를 기존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올리며 공개매수를 꼭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다. 고려아연도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공개매수라는 반격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영풍 측은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사 자금을 이용하는 것은 배임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매수 후 소각’이라는 전략을 택했다. 만약 영풍·MBK 측이 이에 맞서 공개매수가를 재차 올린다면 이들의 ‘쩐의 전쟁’은 길어질 전망이다.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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