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인수위에 아들 앉혀 '충성도 검증'
해리스, 당선 시 공화당 인사 기용 공언
미국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양당 후보와 함께 내각을 구성할 핵심 참모들의 정체에도 이목이 쏠린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권 인수팀에 자신의 러닝메이트와 자녀들을 합류시키며 내각 인선이 '충성심'을 기준으로 이뤄질 것임을 암시했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을 일부 유지하는 한편, 성별과 인종적 다양성을 담보한 인선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두 후보 모두 상대 정당 인사 발탁을 추진하며 통합적인 면모를 드러내려는 움직임도 확인된다.
트럼프의 '충성 내각'…누가 되든 미국 우선주의
미 정치매체 더힐은 지난달 "트럼프 캠프의 함구에도 불구하고 누가 트럼프 내각의 주요 직위를 차지할지에 관한 하마평이 끊이질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트럼프 캠프가 내각 구성안 발표에 관해 시기상조라며 말을 아끼긴 했으나, 과거 트럼프 1기 정부를 구성했던 인사 중 여럿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등을 돌린 만큼 2기 내각은 '충성파' 인물들로 채우리란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이다.
'충성 내각'을 구성하기 위한 물밑 작업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한 린다 맥마흔 전 WWE 최고경영자(CEO)와 하워드 루트닉 캔터 피츠제럴드 CEO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공동 위원장으로 앉힌 상태다.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차남 에릭 트럼프에겐 인수위원회 명예 의장직을 부여했다. 자신의 의중을 지근거리에서 살필 수 있는 인물들에게 차기 내각 후보들에 대한 사상 검증을 맡긴 셈이다.
먼저 내각 최고위직인 국무장관에는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물망에 올랐다. 루비오 의원은 JD밴스 의원과 함께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꼽혔던 인물이다. 특히 상원 외교위 및 정보위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어 수월한 상원 인준을 도모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유력 후보다. 트럼프 1기 핵심 외교·안보 책사였던 그가 국무장관에 오를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동맹국 압박에 한층 힘이 실릴 전망이다. 오브라이언은 지난 7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은) 바다 건너 괴물과 마주하고 있다"며 대만에 최소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만큼은 방위비로 지출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차기 국가안보보좌관 후보로 꼽히는 엘브리지 콜비 전 미국 국방부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 기조를 받드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7월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개최한 행사에서 "한국은 한국의 이익을 우선하고 인도나 폴란드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한다"면서 "왜 우리(미국)는 달라야 하냐"고 발언한 바 있다.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의 방위 역량에 관한 질문에 "한국과 인도가 모델"이라면서 "한국은 GDP의 2.7~2.8%를 국방비로 쓰는 등 굉장한 방위 산업을 보유한 나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거취도 초유의 관심사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방정부 전체의 재정·성과를 감사하고 과감한 개혁 권고안을 제시하는 위원회를 만들 것"이라며 머스크 CEO가 정부 효율 위원회의 지휘봉을 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용 실태를 들춰내는 한편 머스크 CEO 영입으로 IT 업계의 지지를 등에 업으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머스크 CEO 역시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며 "급여도, 직책도, 인정도 필요하지 않다"고 화답했다.
재무장관 후보로는 월가 거물들과 워싱턴 D.C. 관료 출신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 중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 단기간에 200억달러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진 헤지펀드 매니저 존 폴슨은 단연 유력 후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초 뉴햄프셔주 유세에서 존 폴슨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고 칭하며 "어쩌면 그를 재무부에 앉힐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월가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의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던 스콧 베센트도 발탁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 밖에 트럼프표 통상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월가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도 하마평에서 언급된다. 다만 라이트하이저의 경우 재무부 운영에 필요한 경제 정책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다이먼 회장은 본인이 재무장관직을 고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WSJ는 "트럼프가 2016년 다이먼 회장을 재무장관으로 검토했으나 다이먼 회장 본인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이먼 회장은 머스크 CEO와 한때 소송까지 불사할 정도로 앙숙이었지만, 최근 서로의 행사에 연사로 참석하는 등 화해 모드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스의 '다양성 내각'…첫 여성 국방부 장관 탄생 주목
해리스 부통령의 경우 인도계 흑인이자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에 도전하는 만큼 성별·인종·정치 성향 등이 균형 잡힌 내각을 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 첫 여성 국방부 장관 탄생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3년간 국방부 정책 차관보를 지낸 미셸 플러노이는 미 국방부 역사상 가장 높은 직책에 오른 여성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유력한 국방부 장관 후보로 거론됐으나, 최초의 흑인 국방부 장관 타이틀을 거머쥔 로이드 오스틴에게 자리를 내줬다.
재무장관의 경우 재닛 옐런 현 장관의 유임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지나 러몬도 현 상무부 장관과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가 함께 거론되고 있다. 다이먼 회장 역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양당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음을 증명했다. 국무장관은 현 토니 블링컨 장관이 유임을 고사해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후임으로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가장 민감한 외교 임무를 담당해온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첫손에 꼽힌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경고장을 날리는가 하면 최근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휴전 협상 테이블을 주도하는 등 존재감을 과시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자기 여동생의 남편을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힐지도 관전 포인트다. 과거 오바마 정부 시절 법무부 차관보를 역임한 토니 웨스트 우버 최고법률책임자(CLO)는 현재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해리스 캠프의 선거 자문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웨스트는 해리스의 비밀무기"라며 "그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후보 사퇴 이후 몇 시간 동안 통화하며 미래에 대해 논의할 정도로 긴밀한 사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웨스트 CLO가 우버라는 IT 대기업의 이권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은 노동권 유권자들의 저항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해리스 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은 로이 쿠퍼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미는 분위기다. 해리스 부통령과 각별한 사이로 한때 러닝메이트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던 그는 2016년과 2020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했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연거푸 주지사로 선출되며 유명해졌다. 특히 해리스 부통령과 같은 주 검찰총장 출신으로서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메디케이드 확대는 물론, 형사 사법 개혁, 성 소수자 권리 등 민주당 의제에 부합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반감을 품은 온건파 및 무소속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선출직 공무원이란 점에서도 강점을 지녔다는 평가다.
해리스도 트럼프도…상대 정당 감싸 안기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당선 이후 상대 정당 인사를 내각에 기용하는 것에 열린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당선인으로서 화합의 메시지를 던지고 대인배적 면모를 부각할 기회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앞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조지 W. 부시 내각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을 유임시키는 등 공화당 인사들을 기용한 바 있다.
앞서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8월 대권 주자로서 참석한 첫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집권 시 공화당 구성원을 내각에 기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보수 거두'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이자 공화당 내 대표적인 '반(反)트럼프' 인사인 리즈 체니 전 하원의원, 민주당 전당대회에 연사로 나섰던 애덤 킨징어 전 하원의원이 거론된다. 이베이 CEO 출신으로 바이든 행정부에서 상무부 장관 후보로 고려됐던 멕 휘트먼 주케냐 미국 대사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와 툴시 개버드 전 연방하원의원 등 민주당 출신 인사를 포섭한 상태다. 특히 케네디 주니어에 식품의약품청(FDA)을 비롯한 미국 주요 보건 기관의 장들을 인선하는 역할을 맡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건부 장관 내정설이 돌고 있다. 다만 케네디 주니어는 과거 백신 음모론 주장으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어 야당의 격렬한 반발이 예상된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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