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변화에도 PC에만 집중
삼성·TSMC 대비 7~8년 뒤처져
최근 반도체 산업에서의 급격한 변화가 눈에 띄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인텔의 위기와 그에 따른 전략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한때 세계 반도체 업계를 주도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인텔은 최근 몇 년 동안 경쟁력 상실로 인한 심각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특히 기술적 격차가 커지면서, 인텔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텔은 과거 PC 시장에서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했다. 새로운 CPU가 출시되면 전 세계가 열광하며 그 제품을 기다릴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PC의 중요성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인텔의 독점적 지위는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모바일 시대가 열리며 많은 기업들이 스마트폰 시장으로 진입할 때, 인텔은 여전히 CPU에만 집중하면서 시대적 흐름을 놓쳤다. 이로 인해 인텔은 지난 7~8년간 계속해서 뒤처지는 모습을 보여왔다.
인텔의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는 미세 공정 기술 경쟁에서 뒤처진 것이다. 인텔은 종합반도체 기업으로서 설계와 제조를 모두 담당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경쟁사인 TSMC와 삼성전자가 미세 공정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동안, 인텔은 기술 도입을 늦추며 결국 시장에서 밀려났다. 특히 인텔은 미세 공정 기술을 위해 필수적인 장비인 ASML의 EUV 장비 도입을 주저하며 TSMC와 삼성전자에게 기술적 격차를 크게 벌리게 했다. 이로 인해 인텔은 14나노 공정에 머물며, 더 이상 CPU 성능을 혁신적으로 개선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ASML은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제조 업체로, 전 세계에서 EUV 장비를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다. 인텔은 초기 ASML에 기술과 자금을 지원해 장비 개발을 도왔지만, 정작 중요한 시점에서 EUV 장비 도입을 주저하며 경쟁사들에게 기회를 넘겨주었다. TSMC와 삼성전자는 공격적으로 EUV 장비를 도입해 10나노 이하 공정으로 빠르게 전환했고, 현재는 3나노, 2나노 공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 인텔은 미세 공정 도입을 미루면서 CPU 성능 향상에서 경쟁사에 뒤처지게 되었다.
인텔의 위기는 단지 제조 공정에만 그치지 않았다. 설계 부분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인텔은 오랜 기간 동안 CPU 설계와 제조를 모두 담당하며 시장을 지배해왔지만, 경쟁사 AMD는 설계에만 집중하는 전략으로 전환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AMD는 파운드리 사업을 매각하고 설계에 집중한 덕분에 CPU 성능을 대폭 개선했고, 인텔이 놓친 기회를 적극 활용해 시장 점유율을 크게 확대했다. 특히, AMD는 서버용 CPU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면서 인텔의 주요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또한 애플의 움직임도 인텔에 큰 타격을 주었다. 애플은 2020년 자체적으로 개발한 M1 칩을 발표하며, 기존에 인텔과 협력해오던 PC 사업에서도 인텔의 CPU를 완전히 배제했다. 애플의 M1 칩은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고, 전력 소비가 적으면서도 인텔의 고성능 CPU와 유사한 성능을 제공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애플 제품의 인기가 더욱 높아졌고, 인텔은 고성능 PC 시장에서도 타격을 입었다. 한때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든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혁신적이던 인텔의 CPU는 이제 더 이상 소비자들에게 혁신적인 제품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서버 시장에서 인텔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AI 시대가 도래하며 데이터 센터와 서버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인텔은 서버용 CPU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AI 서버에는 전력 효율성이 높은 CPU가 필수적인데, 인텔의 CPU는 여전히 전력 소모가 많고 성능 향상도 더딘 상태다. 이에 반해 AMD는 전력 효율성이 뛰어난 서버용 CPU를 내놓으면서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으며, ARM 기반 설계를 채택한 서버용 CPU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인텔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내놓았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전략은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한 것이다. 인텔은 설계와 제조를 모두 담당하는 종합반도체 기업으로서 오랜 기간 경쟁력을 유지해왔지만, 최근의 시장 변화와 기술 격차로 인해 파운더리와 설계 부문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인텔이 더 이상 제조 공정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시장에서는 이를 인텔의 구조적 위기로 보고 있다.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분사 결정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파운더리 사업을 분사함으로써 인텔은 제조와 설계를 분리하여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특히, 인텔은 새로 출시한 루나레이크와 에로레이크 칩의 제조를 TSMC에 맡기면서 자체 파운더리 능력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만약 TSMC가 제조한 인텔의 칩이 성공을 거둔다면, 이는 인텔의 파운더리 사업의 실패를 인정하는 셈이 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AI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기회를 잡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특히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HBM은 AI 및 데이터 센터에서 필수적인 고성능 메모리로, NVIDIA의 AI 서버에 탑재되며 큰 수요를 얻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 기술을 선도하며 NVIDIA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고, 삼성전자 역시 HBM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모건 스탠리가 발표한 보고서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모건 스탠리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주가를 하향 조정하며, 향후 반도체 수요가 둔화될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 특히 HBM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SK하이닉스의 독점적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는 일시적으로 하락했지만, HBM 및 AI PC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장기적인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다.
AI 시대가 도래하며 반도체 시장은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 센터와 AI 서버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고성능 메모리와 CPU에 대한 수요도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시대에 맞는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하며, 반도체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고 있다. 특히 AI 서버용 메모리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큰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결국, 인텔의 몰락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인텔은 오랜 시간 동안 반도체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해왔지만, 시대적 변화와 기술 혁신에 뒤처지며 경쟁력을 상실했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시대에 맞춰 빠르게 대응하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이번 인텔의 위기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더 큰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더욱 강력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이경도 PD lgd012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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