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이 "지금은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종교, 과학, 기술, 의료와 같은 사회 여러 영역에서 소통하고 숙의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검찰과 사법에 몰아넣는 가히 ‘소용돌이의 사법’ 시대"라며 "이해관계에 유리하면 환호하여 갈채를 보내고, 불리하면 비난하고 침을 뱉어 검찰을 '악마화'하는 현상이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이 총장은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별관 4층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극단적 양극화에 빠진 우리 사회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고함과 비난, 조롱과 저주, 혐오와 멸시가 판을 친다"며 "진영과 정파, 세대와 성별, 계층과 지역으로 나뉘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아니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그리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회가 됐다"고 했다.
이어 "한쪽에서는 검찰독재라 저주하고, 한쪽에서는 아무 일도 해낸 것이 없다고 비난한다. 한쪽에서는 과잉수사라 욕을 퍼붓고, 한쪽에서는 부실수사라 손가락질한다"며 "만약 그 일이 상대 진영에서 일어났다면 서로 정반대로 손가락질하며 평가했을 일을,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오로지 유불리에 따라서만 험한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용돌이의 사법 시대에도 법치주의 원칙을 지켜내 줄 것을 당부했다.
이 총장은 "민생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응하는 것과 함께 검찰의 주된 존재 이유는 '옳은 것을 옳다, 그른 것을 그르다'고 선언하는 것"이라며 "권력 쟁취를 위해 기본 규범과 규칙을 외면하기 시작하고, 곧이어 입법 과정이 흐트러지고, 검찰제도와 사법절차가 훼손되며, 법과 제도마저 권력투쟁의 도구로 전락하면 공적 신뢰와 함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소용돌이의 사법' 시대에 심화된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로 오로지 상대 진영을 공격하고 자기 진영을 방어하는 데에만 매달리는 양극단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총장은 "검찰은 '옳은 일을 옳은 방법으로 옳게 하는' 사람들"이라며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해 하나하나의 사건마다 '지구가 멸망해도 정의를 세운다'라는 기준과 가치로 오로지 증거와 법리만을 살펴 접근해야 하고, 개인이나 조직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과 사법에 사회의 모든 문제를 몰아넣고 맡겨 오로지 자기 편을 들어달라고 고함치는 '소용돌이의 사법' 시대에도 검찰은 '법의 지배' '법치주의'의 원칙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총장은 "2022년 5월 검찰총장 직무대리로 시작해 9월 검찰총장에 취임한 후 오늘로 2년4개월"이라며 "한 날, 한 시도 노심초사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쏟았지만, 처음 품었던 뜻을 모두 실천하지는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검찰이 세상사 모든 일을 해결해 줄 '만능키'라고 여기는 사람들과 검찰을 '악마화'하는 사람들, 양측으로부터 받는 비난과 저주를 묵묵히 견디고 소명의식과 책임감으로 버텨온 시간이었다"며 "마주하는 모든 일마다 오로지 증거와 법리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판단하고 국민만 바라보고 결정하려 노력했지만, 국민의 기대와 믿음에 온전히 미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한편 이 총장은 ▲검찰 수사권 조정과 이른바 '검수완박' 법 개정 이후 법령과 제도 정비 ▲성폭력·디지털성범죄, 스토킹, 혐오범죄,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아동학대, 마약, 음주운전, 금융·증권범죄 등 민생범죄에 역량을 집중한 점 ▲증권범죄합수단, 가상자산범죄합수단, 보이스피싱합수단, 국가재정범죄합수단, 마약범죄특별수사본부, 환경범죄합동수사팀 설치 ▲국토부와 '전세사기', 경찰과 '성폭력·디지털성범죄·스토킹 대응협의회' 구성 및 운용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관련 고용노동부와 함께 산업재해 예방 및 임금체불과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엄정대응 기조를 수립 ▲노조의 취업비리와 건설현장 불법집단행동에 대한 일관된 기준 적용 ▲제주 4·3, 납북귀환어부, 5·18 관련자의 직권재심과 명예회복, 서해공무원 피격사건과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기소 등을 임기 동안의 성과로 꼽았다.
다만 그는 "그동안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이 있다면 이는 검찰구성원 여러분이 피와 땀과 눈물로 애쓰신 덕분이고, 아쉽고 부족한 것은 모두 제 지혜와 성의가 모자란 탓"이라며 공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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