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8일 새벽 1시. 남편 김모씨(29)가 아내 A씨(25)의 입술을 주먹으로 여러 차례 때렸다. 자신이 수감돼 있는 동안 외도를 했다는 이유였다. 도박개장과 특수협박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살고 같은 해 7월 6일 광주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이틀 만이었다. 2022년 4월 혼인신고를 한 지 불과 1년 3개월 만이기도 했다.
출소 후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A씨와 함께 지낸 김씨는 수시로 A씨에게 "끝까지 교도소에 있지 않고 언젠가는 나온다. 너 하나 찾아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끝까지 찾아낼 거다. 사람 한 명 죽이고 들어갈 바엔 죽이고 싶은 사람 모두를 다 죽이고 들어갈 거다"라고 말하며 겁을 줬다.
폭행 다음 날인 2023년 7월 9일 새벽 2시, 전날 폭행을 당해 겁을 먹은 A씨에게 김씨는 일명 '어금니 아빠' 사건의 문신 검색 결과를 보여주면서 "나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면 네 몸에 어금니 아빠 문신처럼 새겨라"라고 말했다.
어금니 아빠 사건은 방송을 통해 자신과 마찬가지로 희소병인 거대백악종(잇몸과 치아 뿌리의 백악질에 거대한 종양이 자라는 병)을 앓고 있는 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미담으로 알려졌던 이영학이 자신의 중학생 딸을 시켜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게 한 뒤 수면제를 먹이고 성폭행을 시도하다 깨어 저항하자 살해한 뒤 유기한 사건이다. 이영학은 아내 몸의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직접 문신으로 새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A씨를 광주 동구 충장로의 한 문신 업소로 데려가 A씨의 손목과 다리, 등, 치골 등 모두 5곳에 문신을 새기게 했다. A씨의 오른쪽 다리와 등에는 '평생 OO의 여자로 살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치골에는 혼인신고 날짜와 함께 김씨의 이름이 새겨졌다.
사흘 뒤인 2023년 7월 12일 저녁 폭행은 다시 이어졌다.
A씨에게 외도 문제를 추궁하다가 화가 난 김씨는 손으로 A씨의 머리를 때리고, 목을 졸랐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자 김씨는 "누구 하나 죽자"고 말한 뒤 편의점에서 소주와 맥주를 사 왔다.
술을 마시면서 A씨가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대답을 하면 김씨는 손으로 A씨의 얼굴을 때렸고, 주방 가위와 미용 가위로 A씨의 앞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했다.
김씨는 평소 뱀을 싫어했던 A씨에게 "넌 내 고통을 모를 거야, 네가 뱀 싫어하는 것보다 몇만배 더 일분일초가 괴롭다"고 말하면서 A씨의 휴대전화 유튜브 앱을 통해 뱀 영상을 튼 뒤 A씨가 시청하게 했다.
김씨는 화장실에 갈 때는 A씨를 화장실 문 앞에 있으라고 한 뒤 수시로 화장실 문을 여는 식으로 A씨가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했다. A씨는 김씨가 화장실에서 전화하는 틈을 이용해 다음 날 새벽 3시 30분, 감금된 지 9시간 반 만에 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날 A씨는 약 21일간 치료를 필요로 하는 고막의 외상성 파열 등 상해를 입었다.
검사는 김씨를 상해, 강요, 중감금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 법원은 김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배우자인 피해자를 주거지에 감금해 상해를 입히고, 피해자를 협박해 피해자의 신체 여러 군데에 상당한 크기의 문신을 새기도록 강요한 것으로 피고인의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질책했다.
또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피해자는 큰 두려움과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에게 발생한 상해의 정도가 약하지 않은 점, 비록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하긴 했으나 피해자의 피해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고 앞으로 피해자가 문신을 제거하는데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은 특수협박죄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아 그 형의 집행을 종료했음에도 출소한 지 이틀 만에 다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점, 피고인은 폭력 범죄로 7회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점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이다"라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김씨가 A씨에게 1300만원의 합의금을 주고 처벌불원서를 받아 제출한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에서 그는 범행 당시 자신이 술에 취해있었다며 '심신미약' 감경을 주장했다.
재판부는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이 2016년 2월경부터 이 사건 범행 무렵까지 수면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ADHD 등으로 병원 진료를 받고 약물을 복용한 사실, 피고인이 범행 당시 소주 1병 및 맥주 1병 정도 또는 소주 1~2병 정도의 술을 마신 사실은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당시 충동조절에 다소 취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는 있을지언정,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해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라며 "결국 피고인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이 사건 각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세 번째 범행(중감금치상) 직후 112에 전화해 자수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주거지와 당시 상황을 설명한 점 ▲수사기관 조사에서도 피해자가 외도한 사실을 알게 돼 범행을 저질렀다고 범행의 이유와 동기를 설명하고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억해 진술한 점 ▲김씨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김씨의 평소 주량은 소주 4~5병 정도여서 범행 당시 주량을 초과하는 정도의 술을 마시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충동조절장애와 같은 성격적 결함은 원칙적으로 형의 감면사유인 심신장애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되,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해서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심신장애로 인한 범행으로 취급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김씨와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도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1심의 징역 5년 형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형은 중요한 정상들을 빠짐없이 검토해 결정된 것으로 보이고, 원심의 형을 변경할 만한 양형조건의 변화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2심 진행 도중 김씨와 A씨의 협의이혼 절차가 마무리됐고, 김씨가 다시는 A씨를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김씨의 과거 폭력 범죄전력이나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할 때 그 같은 사정만으로 양형조건에 유의미한 변경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고 봤다.
김씨는 다시 상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원심의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심신장애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김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김씨는 상고를 하며 "원심의 양형판단에 죄형균형의 원칙 또는 책임주의 원칙을 위반한 위법이 있다"라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같은 취지의 주장은 양형부당 상고이유에 해당한다"라며 "형사소송법 제383조 4호에 따르면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서만 양형부당을 사유로 한 상고가 허용되므로, 피고인에 대해 그보다 가벼운 형이 선고된 이 사건에서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은 적법한 상고이유로 삼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배척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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