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슈퍼에서는 '1인 1봉지' 판매 제한도
폭염에 생산량 감소…관광객 늘어 수요는 급증
일본에서 쌀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마트에서도 빵과 면은 있는데 정작 도정된 백미는 다 팔려서 없고, 그나마 들어오는 재고도 1인당 구매 개수에 제한을 둘 정도다. '레이와 시대(2019년 이후) 쌀 소동'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니혼테레비(닛테레)는 "전국 각지 슈퍼와 마트에서 쌀이 사라지고 있다"며 쌀 품귀 현상에 대해 연일 집중 보도하고 있다. 최근 닛테레는 텅 빈 마트 쌀 진열대를 보여주며 "개수 제한을 두고 쌀을 판매하고 있지만 정작 진열대는 텅 비었다"고 소개했다. 취재 도중 5kg 백미 6봉지가 입고되자 이를 사기 위한 고객들의 쟁탈전이 벌어졌다. 1인 1봉지 구매 제한으로 겨우 쌀 한봉지를 구매한 고객은 "마트를 돌아다니다 7번째 마트에서 겨우 찾은 것"이라고 닛테레에 전했다.
심지어 수도권에서 쌀을 사기 위해 직접 쌀 생산지 직판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직판장에서도 품절사태가 벌어졌다. NHK는 호쿠리쿠 지방의 후쿠이현 쌀 직판장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미 지난 10일부로 백미 재고가 없어 판매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직장 근처 슈퍼도 돌아보고 있는데 정말 쌀을 안 판다. 현미마저 없어졌다", "가게에 쌀이 없고 있어도 정말 비싸다", "쌀이 없어 면만 먹고 있다"라는 게시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NHK는 "구글에서 최근 1개월 동안 '쌀'이라는 단어의 인기도 동향을 조사하면 '쌀 부족', '쌀 없다'라는 단어가 연관 검색어로 나오고, 그 숫자는 8월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번 품귀현상은 지난해 폭염으로 쌀 생산량이 감소한 가운데 수요가 급증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물가 상승 여파가 계속되는 가운데 빵이나 면 등 밀가루 가공품 대비 쌀값의 상승률은 비교적 완만해 대체재로 수요가 증가했다. 게다가 방일 관광객도 부쩍 증가해 음식점 등의 쌀 수요가 대폭 늘었다는 것이다.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1년 치 주식용 쌀 수요는 702만t으로 지난해 대비 11만t 늘어 10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반면 쌀 재고는 6월 말 기준 156만t으로 전년 동월 대비 20%(41만t) 줄어 199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지난 8일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규모 7.1 지진이 발생한 뒤 난카이 대지진 정보(거대 지진 주의보)가 발령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사재기 현상이 일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닛테레는 "난카이 대지진 정보가 발령된 이후 오사카시의 마트에는 한 주간 평소 대비 약 10배 이상의 문의가 빗발쳤다"며 "물량 부족에 사재기가 겹치면서 현재 재고는 평소의 10% 정도라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농림수산성은 "원래 8월은 햅쌀의 본격적인 출하를 앞두고 1년 중 쌀 재고가 가장 적어지는 시기"라며 "아직 긴급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소비자의 안심을 당부했으나, 소비자의 불안은 심해지고 있다. 일본은 1993년에도 이와 같은 쌀 소동을 겪었다. 냉해와 장마의 영향으로 쌀 품귀현상이 나타나 정부가 태국 등 다른 국가에서 쌀을 긴급 수입해오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정작 수입한 태국 쌀은 일본인 입맛에 맞지 않아 다시 국산 쌀을 찾아 마트 등에서 사재기가 이어졌고 이같은 혼란은 이듬해까지 이어진 바 있다.
그러나 햅쌀 출하를 기다리는 것 말고 현재 별다른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다. 관서 지방에서 쌀을 생산하는 시가현의 경우 이달 중순부터 수확이 이뤄지고 있다. 농림수산성은 햅쌀 출하가 시작되는 다음 달에는 품귀현상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는 낙관론이라고 지적했다. 이토 료지 니가타대학 농학부 조교수는 "11월은 돼야 전국 각지의 햅쌀이 모두 유통되기 시작하니 수급 문제는 그때 정리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12월까지도 기존보다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는 분위기가 유지될 것"이라고 ANN에 전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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