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사우디·필리핀·독일 기업과 접점 늘려
최수연 대표 "글로벌 소버린 AI 생태계 확장할 계획"
프랑스·중국·핀란드·인도 등 자체 AI 모델 개발 중
네이버가 인공지능(AI)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벼르고 있는 전략은 소버린 AI다. 미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가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해가는 상황에서 이들에 종속되지 않는 AI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일종의 틈새 전략이다. 다만 소버린 AI 전략은 이제 시작 단계인 만큼,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네이버 입장에선 장기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쌓는 게 관건이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최근 독일 이동통신사 도이치텔레콤과 본사에서 만나 소버린 AI 등을 논의했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이사,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 등이 도이치텔레콤 관계자들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도이치텔레콤은 지난해 10월에도 네이버 본사를 방문한 바 있다. 당시에도 소버린 AI와 함께 클라우드 기술에 대해 논의했다. 구체적인 계약이나 업무협약(MOU) 등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글로벌 기업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소버린 AI는 자주권을 뜻하는 소버린(Sovereign)과 인공지능인 AI의 합성어로, '주권을 가진 인공지능' 또는 'AI 주권'을 의미한다. AI 개발을 선도하는 미국의 언어, 문화를 익힌 AI가 확산하는 상황에 대한 위기감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빅테크의 AI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등 해당 국가나 사회 특유의 문화나 제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AI 모델이 편향적이고 부적절한 답변을 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 결과 자국의 문화 등을 익히고 이를 적극 반영하고자 하는 AI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 소버린 AI를 강조하는 기업과의 협력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프랑스, 대만, 싱가포르 등은 자체 인프라와 데이터를 활용해 독립적인 AI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 AI 기업 미스트랄의 르 챗, 중국 문샷AI의 키미, 핀란드 사일로AI의 바이킹, 인도 크루트림의 크루트림이 대표적이다. 네이버가 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를 통해 글로벌 진출을 모색하는 것과 같은 전략이다.
김진형 카이스트 전산학부 명예교수는 "네이버는 LLM을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국가 언어에 맞는 AI를 만들고 이를 통한 비즈니스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네이버가 소버린 AI를 강화하는 건 글로벌 진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기술력 부족 등으로 인해 자체 AI 구축이 어려운 상황인 곳과 협업을 통해 모델을 제공해 수익을 낸다는 것이다. 자국 언어와 문화의 특수성을 지키고 이를 AI 모델에도 적극 반영하고자 하는 곳은 네이버의 소버린 AI 전략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다. 중동·아세안·일부 유럽 국가·남미에 속한 국가와 기업이 타깃이 될 수 있다. 이런 곳에서 네이버가 AI 모델과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대가를 받게 되면 미국의 빅테크 위주의 AI 산업 구조에서 나름의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자국 AI 모델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 정부 지원 등을 받는 데도 유리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앞서 네이버는 사우디아라비아, 필리핀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으며 소버린 AI와 관련된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 3월 사우디 아람코의 자회사 아람코 디지털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아랍어 LLM 기반의 소버린 AI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5월에는 필리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컨버지 ICT 솔루션즈와 협약을 맺고 소버린 클라우드 및 AI를 활용한 필리핀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소버린 AI의 중요성과 AI 모델 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자국어 중심 모델을 개발했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세계 여러 나라들이 소버린 AI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면서 "AI 인프라, 데이터, 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통된 목표를 가진 기업들과 협력을 구축해 글로벌 소버린 AI 생태계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관건은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을 얼마나 견제하냐에 달렸다. 소버린 AI를 추진하는 기업 입장에서 빅테크의 파상공세는 부담이다. 영국 데이터 분석 기업 토터스 인텔리전스 자료를 보면 지난해 AI 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는 미국으로 파악됐다. 이어 중국, 싱가포르, 영국, 캐나다 순이며 한국은 6위를 기록했다. 세부 내역을 보면 인재(12위), 운영 환경(11위), 연구 수준(12위), 민간 투자(18위) 등으로 집계돼 AI 성장과 확산을 이끌 인력과 제도, 투자에서 한계가 나타났다.
국내 AI 산업을 지원할 AI 기본법 제정도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상황이다. 제정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업계에선 산업 진흥책을 담은 법안이라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캐나다의 경우 컴퓨팅 인프라에 2조원 투자하는 등 AI 진흥을 위한 직접 지원을 하고 있어 정부 지원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영어를 기반으로 한 AI에 의존할 경우 한국은 언어 장벽으로 인해 성능이 다른 국가보다 부족한 AI를 활용하며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며 "네이버가 소버린 AI를 이끌 경우 검색 엔진과 모바일 인터페이스를 변화시킬 것이고 더 나아가 로봇까지 진출이 가능해 파생되는 경제적 이득도 막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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