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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폭탄 우려…재단 기부 고민중인 기업들[날개 꺾인 공익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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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우 풀무원 前 대표, 6년째 지분 기부 고민
복잡한 증여세 면제 조건
기부액보다 증여세 더 큰 경우도 여럿
상증세법·공정거래법 중복 규제도

세금폭탄 우려…재단 기부 고민중인 기업들[날개 꺾인 공익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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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8억6600만달러(약 1조13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기부액은 지금까지 무려 515억달러(약 67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393억달러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세운 빌앤드멀린다 게이츠 재단으로 갔다. 또 수전 톰슨 버핏 재단에 42억달러, 버핏의 세 자녀 수전·하워드·피터가 운영하는 재단에 각각 24억달러 이상이 기부됐다. 두 가지가 눈에 띈다. 기부품목이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이라는 점, 그리고 기부처가 재단이라는 점이다. 버핏의 사례처럼 미국, 스웨덴, 독일, 덴마크 등 해외에서는 재단을 통한 주식 기부가 활성화돼 있다. 한국과 달리 기부주식에 대한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 의결권 제한 등에서 큰 걸림돌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상속증여세법과 공정거래법 등을 통해 면제한도를 매우 낮게 유지하고 있는 데다, 의결권까지 과도하게 제한해 공익재단을 통한 기부 통로를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 그러니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WGI)에서 한국의 순위는 지난해 79위다. 2013년 45위를 기록한 이래 10년간 내리막이다. 아시아경제는 공익법인을 통한 기부 및 건전한 가업승계 활성화를 위해 공익법인에 대한 과잉 규제와 개선 방안을 심도 있게 짚어 본다.

#남승우 풀무원 전 대표의 고민은 6년 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1984년부터 2017년까지 풀무원을 이끈 뒤 퇴임하면서 자신이 가진 풀무원 지분 중 10%를 공익재단인 풀무원재단에 기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증여세 폭탄'이 여전한 부담이다. 학부 시절 전공인 법학을 오랜만에 살려 여러모로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는 후문이다.


기업들이 산하 공익재단에 지분을 출연할 때 과도한 세금이 부과되는 것을 우려해 기부가 위축되고 있다. 조그만 '낙수'조차 아쉬운 재단 입장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풀무원의 최대주주인 남 전 대표는 여전히 보유 지분을 풀무원재단에 넘기지 못하고 있다. 퇴임 이듬해인 2018년 지분 10% 출연을 약속했지만 6년 넘게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남 전 대표가 지난해 2월 풀무원재단 이사에 취임하면서 지분 기부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복잡한 조건에 고민 깊어져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으면서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일부 지분은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남 전 대표의 소신이 바뀐 것은 아니다. 이미 서울대학교발전기금에 2021년 풀무원 주식 10만주(당시 약 20억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대표 재직 시절에도 풀무원 창립자인 고(故) 원경선 원장의 뜻을 이어 설립된 비영리공익법인 한마음재단의 지분도 꾸준히 늘려왔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한마음재단의 풀무원 지분율은 9.99%다.


문제는 계열법인인 풀무원재단에 대한 기부는 고려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법인 출연 주식에 대한 세금 면제 한도는 기업의 규모, 의결권 행사 여부 등에 따라 5~20%까지 바뀐다. 면제 범위를 넓히려면 최저한도로 출연자나 특수관계인 등이 이사 수의 5분의 1도 초과하지 않고 운용소득의 80% 이상을 공익목적에 사용하는 등 기본 요건을 지키고, 정관에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아야 한다. 이 경우 최대 20%까지 세금 면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자칫하면 세금 폭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풀무원재단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남 전 대표님이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이 무척 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직접 여러 경우를 스터디하면서 다양한 방향을 검토하고 계신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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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다 배꼽이 더 커"…증여분과 맞먹는 세금 부과

이미 증여분과 맞먹는 세금 부과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사례는 적지 않다. 수원교차로 창업주 고(故) 황필상 박사의 기부 건이 대표적이다. 2003년 황 박사는 6촌 동생과 함께 전 재산에 가까운 회사 주식 90%(180억원 상당)와 현금 등 210억원을 아주대와 공동 설립한 구원장학재단에 기부했다. 국세청은 2008년 이 재단에 증여세와 가산세 등 140억여원을 부과했다. 황 박사는 세금 때문에 집까지 압류당했고, 가산세가 늘어 총 부담은 전체 기부액을 뛰어넘는 225억원까지 늘어났다. 2009년 장학재단이 소송을 제기해 2017년에서야 대법원이 증여세 취소 판결을 내렸지만 황 박사는 이미 고초를 치른 뒤였다.


고(故)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도 증여세 폭탄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사회 환원과 공익사업 지원 취지로 2015년 오뚜기 주식 3만주(0.87%·당시 시세 315억원 상당)를 남서울은혜교회, 밀알미술관, 밀알복지재단 등에 출연했다. 이때 앞서 1996년 오뚜기함태호재단에 증여한 17만주(4.94%)와 합산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국세청은 함 회장이 별세한 2016년 5% 초과 증여분에 대해 증여세 324억원을 부과했다. 납부비율 조정을 거쳐도 86억원 상당의 증여세를 내게 된 남서울은혜교회와 밀알미술관은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에서야 취소 판결이 나왔다.


복잡한 공익재단 면세 규제 바꿔야

국내 공익법인 출연 주식 대상 상증세 면제한도는 5~20% 선으로 미국(20%·35%), 일본(50%), 독일·스웨덴(한도 없음) 대비 낮은 수준이다. 이마저도 대기업(상호출자제한집단) 소속의 경우 5%로 일괄 적용되고, 일반 공익법인은 특수관계인 이사 수, 운용소득 공익사용 비율, 의결권 행사 여부 등에 따라 갈린다. 다양한 요건으로 제한을 두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상증세법에서 우려하는 의결권 행사를 통한 우회지배의 경우 이미 공정거래법을 통해 일부 예외 상황을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공익법인이 특정 계열사의 단독주주인 경우나 상장사의 경우 주요 의안 대상으로 15% 이내 등 일부만 허용하고 있다. 기업 우회지배 차단과 세수 확보라는 목적의 규제가 중복으로 적용되면서 기부 활성화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한 공익재단 관계자는 "기업의 작은 출연도 큰 도움이 될 정도로 자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복잡한 요건과 규제 정합성을 다듬고 기부문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규제가 정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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