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 대북 수해 지원 용의 발표
"협의할 준비 돼 있어…조속한 호응 기대"
北, 수용 미지수…방역협력 제안 무응답
집중호우로 큰 수해를 본 북한에 우리 정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심각한 피해 상황을 고려해 12년 만에 대북 수해 지원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지만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북한이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박종술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은 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우리 측은 북한 주민들이 처한 인도적 어려움에 대해 인도주의와 동포애의 견지에서 북한 이재민에게 긴급히 필요한 물자들을 신속히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박 사무총장은 "평안북도와 자강도를 비롯한 북한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주민에게 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먼저 폭우로 큰 피해를 본 북한 주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 수해 지원과 관련해선 "지원 품목·규모·방식 등에 대해서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와 협의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조속한 호응을 기대한다"고 했다.
북한은 최근 압록강 인근 지역에 집중된 폭우로 큰 홍수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압록강 하류 평안북도 신의주시·의주군 일대에서 약 4100세대가 침수됐다. 농경지 3000정보를 비롯한 공공건물·시설물·도로·철길도 잇따라 물에 잠긴 상태다. 인명피해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북측은 피해 내용을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9일부터 홍수가 발생한 압록강 유역을 찾아 '애민 지도자'를 연출하고 있다. 피해를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우리 경찰청장 격에 해당하는 사회안전상 등 고위 간부들을 경질했다. 자신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물길을 가르며 피해 현장을 살피거나, 구명보트를 타고 직접 침수 지역을 돌아보는 모습을 북한 매체를 통해 송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폭우로 침수된 신의주시를 찾았을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2차 비상확대회의를 주재했다. 북한의 '비상확대회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이다. 지금의 수해 상황이 '국가적 비상'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방증한다.
당초 통일부는 이날 오전까지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해 "현 단계에선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지만, 불과 반나절 만에 정부 차원에서 수해 지원 용의를 밝혔다. 그만큼 북한 지역의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판단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정부와 적십자사는 북한의 수해 상황을 인지한 뒤 긴밀히 소통하면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북한과의 소통에 대해서는 "현재 별도로 전달할 채널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언론을 통해 제안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수해와 관련해서 우리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인도적 지원에 나선 것은 2000년 이후 4차례다. 2005년 당시 수해복구를 위한 응급구호 세트 등 2억원 상당을 지원했고, 이후로도 2006년 800억원, 2007년 423억원, 2010년 72억원 상당을 각각 지원했다. 2011~2012년에도 우리 정부가 북한의 수해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북한의 거부로 성사되지 않았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부기금이나 남북협력기금으로 집행되며 지원 주체는 그간 적십자사 명의로 진행돼 왔다.
다만, 북한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통일부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였던 2022년 5월에도 코로나19 방역 협력을 위한 실무 접촉을 제의한 바 있지만, 북한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에서 매년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는 건 아니고, 올해 피해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 등을 고려해 (수해 지원을) 제안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수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단하지 않겠다"며 "북한이 우리 측 제의에 호응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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