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노인을 위한 산업은 없다: 고령친화에서 연령친화로[시니어비즈 인사이트]

언론사 홈 구독
언론사 홈 구독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노인을 위한 산업은 없다: 고령친화에서 연령친화로[시니어비즈 인사이트]
AD
원본보기 아이콘

보행 보조 지팡이는 고령자의 신체활동에 도움을 주는 매우 유용한 제품이다. 걷는 데 불편한 고령자의 안전한 보행을 돕고, 균형을 잡아주어 외출이나 이동할 때 안전을 챙겨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행 보조 지팡이만큼 고령층이 사용하기를 꺼리는 제품도 없다. 오히려 등산용 지팡이를 대신 사용하는 고령층들이 많다. 왜 그럴까? 나이 듦을 스스로 부인하고 싶은 태도, 보행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다.


시니어 비즈니스의 중요한 황금률 중 하나는 ‘노(老)티’나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자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능적 측면은 만족시키더라도 모양이나 디자인, 그리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고령층의 욕구를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고령층들에게 제품과 서비스의 활용 가치를 알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먼저 고령층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이다.

최근 해외의 혁신적인 시니어 비즈니스 트렌드를 살펴보면 고령층이 원하는 것으로 ‘다른 세대, 지역사회와의 연계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초기 시니어 비즈니스가 고령층의 생리적인 하위욕구 해결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고령층이 속한 가족 및 지역사회 속에서 존중받고 소속감을 느끼며,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상위욕구 해결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시니어 비즈니스의 제품과 서비스도 노인만을 위한 산업이 아닌 모든 연령층과 연계된 산업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즉 시니어 비즈니스는 ‘노인을 위한 산업’이 아닌 ‘다양한 세대가 함께 활용하는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3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시니어 비즈니스의 발전에 활용할 방법들을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첫째 사례는 세대통합형 노인주거모델의 확산이다. 기존 노인주거는 노후에 필요한 안전한 공간과 다양한 생활보조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중요한 요소이지만, 같은 연령층만이 모여 산다는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고령층이 원하는 진짜 속마음은 독립적이고 개인적 생활은 유지하지만, 자녀 세대나 젊은 세대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간을 원한다.


일본의 고토엔(Kotoen)은 어린이집과 노인주거가 함께 있는 구조로, 고령자들이 아침에 등교하는 어린이들과 함께 체조를 하고, 점심때는 선생님 대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시간을 보낸다. 네덜란드의 후마니타스(Humanitas) 요양원은 값싼 주거를 대학생들에 제공하는 대신 입주 노인들과 대학생들이 함께 좋은 이웃이 되어 시간을 함께 보내도록 한다. 싱가포르의 ‘캄풍 애드머럴티(Kampung Admiralty)’는 노인주거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지역주민들이 이용하는 푸드코트, 병원, 은행, 유치원 등이 건물 내 함께 있어 고령층이 늘 지역주민들과 만날 수 있는 장소이다. 최근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소멸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주민들과 떨어진 곳, 외진 곳에 화려하고 멋진 은퇴자 마을을 만들지만, 고령층이 외면하는 빈 공간이 되는 경우도 있다. 위의 세대통합형 노인주거 사례들은 그 이유를 우리에게 잘 설명하고 있다.

둘째, 유니버셜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적용한 제품의 확산이다. 시니어 비즈니스를 통해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가 과거에는 고령층에게만 특화된 제품으로 한정되었지만, 지금은 유니버셜 디자인을 활용해 모든 연령층에게 유용한 제품으로 대상자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멋진 모양의 실용적인 제품은 고령층뿐만 아니라 젊은 층도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방용품 옥소(OX)의 손잡이는 남녀노소 관계없이 사용하기 편한 대표적인 유니버셜 디자인 제품으로 유명하다. 이 제품을 디자인한 패트리샤 무어는 4년간 80대 노인으로 변장하여 고령층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경험하면서 이 제품을 만들었다. 스웨덴의 대표적인 가구업체 이케아(IKEA)는 자주 쓰는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는 고령층의 생활습관에 맞는 가구인 ‘핵케어(Hack Care)’제품을 선보였다. 이케아는 싱가포르 건축회사와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이 함께 치매고령자와 그 가족들이 함께 집에서 생활하는데 편리하도록 개조한 가구제품을 선보였다. 미국의 스마트의류 제조업체인 센소리아(Sensoria)는 고령층의 보행습관을 관측하여 낙상을 예방하고 건강상태를 관리하기 위한 스마트양말을 만들었는데, 이 제품은 노인뿐만 아니라 운동선수 및 달리기를 좋아하는 젊은 층이 사랑하는 IT제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구고령화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면서 고령층의 불편함을 이해하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유니버셜 디자인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비즈니스 성공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셋째, 세대융합형 일자리 모델의 등장이다. 과거에는 젊은 층과 고령층이 일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로 인식하였으나, 최근 실증연구들과 사례들을 보면 이런 세대 간 갈등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세대 간 서로 보완적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순발력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 유동지능(Fluid Intelligence)이 뛰어나고, 고령 세대는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력과 꼼꼼함이 높아 결정지능(Crystalized Intelligence)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가미카쓰초(上勝町)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52%를 거주하는 산간 마을로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곳이었으나, 1999년 젊은이들이 지역주민들과 함께 마을의 잎사귀를 일식집에 납품하는 마을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지역이 활성화되었다. 젊은 층은 고령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ICT기반 네트워크’와 ‘판매처’를 개발하고, 지역주민인 고령자들은 테블릿PC를 활용해 나뭇잎을 수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인구 고령화로 지역소멸을 걱정했던 작은 도시가 청년과 노인이 함께 마을기업을 설립한 이후 고령자의 소득이 증가하고, 청년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변화하였다. 미국의 비영리기관인 코제너레이트(CoGenerate)는 세대협업으로 저소득 초등학생을 위한 튜터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학생 튜터는 초등학생들이 관심 있는 ICT관련 과목을 가르치고, 은퇴자는 대학생 튜터가 어려워하는 상담과정을 진행함으로써 지역사회 아동학업능력을 향상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시대에 시니어 비즈니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방법으로 세대 간 분업화와 융합이 새로운 일자리 모델로 개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는 단기간에 해결될 현상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저출산 고령화가 새로운 일상, 즉 뉴노멀(New Normal)인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니어 비즈니스는 결국 고령자도 사용하기를 즐기고, 젊은 층도 사용하기를 꺼리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뉴노멀 시대, 다양한 세대를 이해하고, 각 세대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융합·활용할 수 있는 연령친화형 시니어 비즈니스 리더십이 필요하다.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언론사 홈 구독
언론사 홈 구독
top버튼

한 눈에 보는 오늘의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