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SK이노·SK E&S 이사회서 합병 논의
SK온 배터리 사업 살리기 일환
합병 비율 따라 양 사 주주 반발 가능성
주주 설득이 최대 과제 될 듯
SK이노베이션 과 SK E&S가 17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합병을 의결할 방침이다. SK㈜도 이사회를 열고 양 사의 합병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SK㈜는 이들 회사의 지분을 각각 36.22%와 90% 보유하고 있어 이사회에서 합병 안건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초심’ 광고를 이날 공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와 함께 자회사 SK온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을 합치는 방안도 논의한다.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사업 재편)이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SK그룹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이 성사되면 SK온 살리기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SK E&S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소, 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사업을 운영하는 계열사로, 그룹 내에서도 현금 창출력이 뛰어난 ‘알짜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양 계열사 합병은 배터리 사업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게 그룹 내부의 판단이다. 배터리는 인공지능(AI), 반도체와 더불어 그룹의 주요 사업이다. SK온은 2021년 10월 출범 이후 현재 10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룹의 배터리 사업 투자 의지는 크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최근 SK이노베이션 계열 임직원 워크숍에서 "전기차 관련 사업은 예정된 미래"라며 배터리 사업에 지속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사회 당일 공개된 ‘초심’ 광고에서 SK이노베이션은 초심으로 돌아가 기존 석유 사업 중심 투자에서 배터리에 방점을 찍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업계에선 합병안의 통과 여부보다 합병 비율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합병 비율은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를 기준주가 또는 주당 순자산가치(BPS)로 평가하고 비상장사인 SK E&S는 BPS와 주당 수익가치를 가중산술평균한 가액으로 평가해 산정될 예정이다.
SK E&S의 순자산은 7조5000억원으로, 이를 주당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로 환산하면 각각 14만6000원, 41만원이다. 자산가치에 40%, 수익가치에 60% 가중치를 둔 주당 본질가치는 약 30만원이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의 현재 주가는 10만원대이고, BPS는 지난해 말 기준 23만원이다. 만약 SK이노베이션의 BPS를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계산하면 1대 1.3이 되지만 기준주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1대 2.7이 된다. 계열사 사이 합병은 합병가액을 기준시가의 10% 내에서 할인 및 할증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최종 비율은 이 범위(1.3~2.7) 내에서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변수는 SK E&S 투자자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다. KKR은 SK E&S를 상대로 3조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보유하고 있다. 만기 때 투자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환권’과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을 동시에 갖는 종류주식이다.
만약 SK이노베이션 지분 가치를 높여서 합병을 추진한다면 이에 불만을 가진 KKR이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SK E&S는 3조원의 현금 부담을 떠안게 된다. 알짜사업인 도시가스 관련 자회사를 현물 상환하는 방법도 있지만 SK이노베이션과의 합병 실효성을 떨어뜨린다. SK이노베이션 지분가치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조건인 셈이다.
SK E&S로부터 배당금을 받아왔던 SK㈜ 주주들이 반발할 여지도 크다. SK E&S의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합병 비율이 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는 이유다. 다만 이렇게 되면 기존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지분율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주식매수청구권 기준가가 주가보다 높게 형성되면 주식을 팔겠다는 주문이 늘어 합병이 무산될 수도 있다.
SK이노베이션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9월 1조14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당시 발행가액은 13만9600원으로,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 30% 가까이 주가가 내린 상황이다. 합병까지 성사되면 유상증자에 참여한 직원들도 회사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이사회에서 합병 비율이 정해지더라도 주주들을 설득하고 합병을 추진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반적으로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비율이 1대 2로 형성될 것이란 시각이 많지만 산정 근거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양쪽에서 모두 불만이 나올 수 있다"며 "주주 설득이 최대 난관"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은 연말까지 추가적인 리밸런싱 작업을 이어갈 전망이다. 배터리 사업의 경쟁력 확보 외에 AI, 바이오 등 다른 미래 성장 분야에서의 성과를 이어가기 위한 작업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리밸런싱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인력 재조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SK에코플랜트와 SK스퀘어 대표가 교체됐고 SK온 최고사업책임자(CCO)도 보직 해임된 바 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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