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에 사는 사람 떠나면 관광 매력도 사라져”
지속가능 관광기반 마련 위해 특별관리지역 지정
“종로구에는 겹겹 규제…규제 걷어내야 서울도 발전해”
서울시장은 자치구 믿고 필요한 권한 넘겨줘야
"한옥 뜰에다가 자쿠지를 만들어 놓으니, 주민들이 매일 밤 강제로 에로영화를 봐야 하는 일이 생겨요. 한옥스테이(한옥체험업)는 원래 집주인들에게 하라는 얘기였는데 법인이 들어와 기업화하고 있어요. 신고제로 돼 있으니 (구청에서) 막기도 어렵습니다."
지난 9일 서울 수송동 구청 임시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정문헌 서울 종로구청장은 욕조(자쿠지)와 에로영화 얘기를 꺼냈다. 이는 북촌한옥마을에 관한 내용이었다. 정 구청장은 "정주(定住) 여건이 깨지면 관광 자원 가치도 떨어질 것"이라며 "사람도 살고, 동네도 죽지 않고 보존하도록 상위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문화 자원이 풍부한 종로 북촌한옥마을에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자 몇 년 새 한옥스테이가 늘었다. 한옥체험업은 등록 절차가 간단하다 보니 법인이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면서 거주환경을 심하게 훼손한다는 게 정 구청장의 얘기다.
욕조를 들여놓은 한옥 앞마당에서 밤마다 에로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지는데 거기서 어떻게 살고, 아이들을 키우겠냐는 것이다. 정 구청장은 "목적에 맞게 신청자격을 법인이 아닌 개인으로 한정하고, 민박업에 준하는 제한을 두는 등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지난 9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종로에 겹겹이 걸쳐있는 규제를 실효성 있게 풀어야 한다"면서 “서울시에서도 주민들과 자치구를 믿고 넘길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로구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종로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가회동과 삼청동 일대 북촌 거주 인구는 5년 전인 2018년보다 27.6%나 줄었다. 종로구가 최근 북촌을 관광진흥법상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관광객 통행 시간과 관광버스 주차를 제한하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 구청장은 "전세버스 불법 주정차가 잦은 북촌로 일대 통행을 제한하되 주변에 승하차장을 조성해 보행 중심 여행으로 관광 패턴 변화를 유도할 것"이라며 "종로 곳곳을 도보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야 상습 정체를 해소할 수 있고, 상권이 활성화돼 지속가능한 관광기반이 마련된다"고 했다.
그는 북촌의 정주 인구 감소가 관광객으로 인한 소음과 쓰레기, 불법 주정차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거주하기 편하게 한옥을 고치려 해도 규제가 워낙 많아 마음대로 손을 볼 수 없으니 불편해서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 구청장은 종로구 전체에 겹겹이 걸쳐있는 규제 얘기도 꺼냈다. 그는 "고도제한, 군사보호지역, 문화재보호구역, 자연경관지구, 지구단위계획 등 종로에는 이중삼중으로 규제가 중첩돼 있다"며 "50년 전 만든 규제를 획일적으로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년간 서울시구청장협의회장을 맡았던 그는 "시청 허락 없이는 구청에서 가로수 수종 하나 골라 심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주민들과 자치구를 믿고 권한과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종로구는 올해 종로복지재단 출범, 복합청사 착공 등 굵직한 이벤트가 줄줄이 있다고 했다. 올 9월 출범할 종로복지재단은 종로구의 복지시설 역량을 강화하고, 1인가구 증가·복지 사각지대 등 다양한 지역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종로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2021년 철거 후 문화재 발굴조사 등으로 아직 착공하지 못한 종로구청사도 올해 착공한다. 이곳에는 구청 업무시설은 물론 종로소방서, 소방재난본부, 보건소, 구의회 등을 비롯해 음악동, 문학관 등 주민 교육·문화시설이 포함된 다기능 복합청사가 들어선다.
정 구청장은 서른여덟에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서울 25개 구청장 중 유일하게 재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2022년 종로구청장에 선출돼 3년 차를 맞고 있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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