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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 많았던 월북, 미군도…[필사의 탈주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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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학 중령 월북…20사단 후방으로 밀려
조준희 일병 동료 열여섯 명 학살하고 월북
월북한 미군 여섯 명 선전도구로 이용당해

1970년대까지 많았던 월북, 미군도…[필사의 탈주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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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군사분계선을 넘는 사람들은 남쪽을 바라보며 움직인다. 하지만 과거엔 월북도 많았다. 월북·월남이 많이 일어난 군사 분계 지역은 강원도 철원군 역곡천이다. 유운학 중령의 월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철책선 경계 부대인 20사단 62연대 대대장이었다. 1977년 10월 무전병인 오봉주 일병을 데리고 북으로 향했다. 청와대와 군이 발칵 뒤집혔다. 정전협정 뒤 월북한 현역 군인 가운데 가장 고위급인데다 DMZ를 지키는 부대의 지휘관이어서다. 철책선과 DMZ 내 경계 작전 전술을 비롯한 각종 군사정보가 통째로 북한에 넘어갈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유 중령은 지뢰가 매설돼 있지 않은 지점만 절묘하게 찾아내 월북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보고받은 자리에서 20사단을 후방으로 빼고 대신 5사단을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그날 밤 철원군과 경기도 연천군에 주둔하던 20사단은 경기도 양평군으로 이동했다. 군기 저하에 대한 징계 차원이었는지 일부 부대는 완전군장을 한 채 걸어갔다. 국방부는 월북 이유를 도박 빚과 여자 문제 등 사생활 문란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동료 장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일주일 전 작전 지역에서 벌어진 보안부대 대위의 월북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해 여름 이 지역 상공에선 군무원 이장수 씨가 연습용 군 비행기를 몰고 북으로 갔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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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월북 사례로는 조준희 일병이 자주 거론된다. 정전 뒤 DMZ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살해사건 주범이다. 1984년 6월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에 있는 감시초소(GP)에서 동료 열여섯 명을 소총 난사와 수류탄 투척으로 학살했다.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도주하는 과정에서 추격하던 수색대원 네 명도 지뢰를 밟아 사망했다. 북으로 넘어간 그는 의거 월북한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기자회견까지 했다.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기준만이 적용됐다. 넘어간 놈은 배신자, 넘어오신 분은 의로운 영웅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저서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에 "지금이야 경제와 사회 구조 면에서 격차가 상당해 월북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과거에는 상황이 달랐다"며 "1980년대 이전까진 남과 북의 체제 경쟁에서 남쪽이 밀렸기 때문에 북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심리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기술했다. 고(故) 강창성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1953년부터 1979년까지 월북한 군인은 391명이다. 1980년부터 1989년까진 열일곱 명, 1990년부터 1995년까진 세 명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밝힌 정전 뒤 전체 월북자 수는 약 600명. 과반은 군인으로 추정된다. 1966년 전까진 DMZ에서 충돌이 적고 군사 시설도 철조망 수준이라 민간인도 제법 넘어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철책이 도입되고 군사 시설을 증설하면서 민간인 월북은 크게 줄었다.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 일병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 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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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자 명단에는 미군 여섯 명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북한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생하다 숨졌다. 시초는 래리 알렌 일병이다. 대마초를 피우다 적발돼 군사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자 1962년 5월 파주 DMZ를 통과했다. 그는 미국을 비난하는 연극에 출연하는 등 선전도구로 이용당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월북한 미군은 조지프 T. 화이트 일병이다. 1982년 8월 파주 서부전선을 가로질렀다. 월북으로 가장 유명한 미군은 찰스 로버트 젠킨스 중사다. 1965년 1월 맥주 열 캔을 마시고 술김에 월북했다. 북한에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그는 2004년 북일 수교 협상을 틈타 일본으로 귀환했다.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 일병도 영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경계선을 넘어서'에 소개돼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편집자주최근 극장가 화두는 군사분계선을 넘는 사람이다. '하이재킹'에서 용대(여진구)는 월북, '탈주'에서 규남(이제훈)은 월남을 시도한다. 다른 방향은 변화한 시대상을 가리킨다. 전자의 배경은 1970년대 초반이다. 한 해 탈북민이 많아도 열 명 미만이었다. 정부가 유공자나 귀순 용사로 대접할 만큼 귀했다. 오랫동안 이어진 흐름은 1990년대 중반에 뒤집혔다. 탈북민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주요 원인은 남북한의 경제 변화. 남한은 고도성장과 함께 생활 여건이 크게 향상됐다. 반면 북한은 무리한 정치 논리 속에 계획경제 시스템이 붕괴해버렸다. 유례없는 자연재해로 수백만 명이 아사하기도 했다. 북한 정권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 명명할 만큼 최악의 시련을 맞았다. 여파는 규남이 목숨을 건 지금도 계속된다. 이들의 실제 역사를 되짚고 실태를 들여다본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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