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날드를 방문했다. 5달러짜리 햄버거 세트 출시 소식에 귀가 솔깃해진 까닭이다. 맥더블 햄버거, 감자튀김, 치킨 너겟 네 조각으로 구성된 세트 메뉴가 단돈 5달러였다. 맥도날드 대표 햄버거인 빅맥(5.99달러) 가격보다 쌌다. 햄버거 크기가 작긴 했지만 세트 메뉴 구성상 양도 충분했고, 한끼 식사로도 나쁘지 않았다. 여기에 맥도날드는 1달러 이상 구매하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감자튀김 무료 쿠폰도 제공했다. 물가 높은 뉴욕 한복판에서 한화 7000원에 점심 한끼를 때울 수 있다니 심리적인 만족감이 더 컸다.
미국 대표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날드가 최근 햄버거, 감자튀김, 치킨 너겟 네 조각으로 구성된 햄버거 세트 메뉴를 단돈 5달러에 출시했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미국에서는 패스트푸드라도 만원 안팎에 식사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 동부 유명 햄버거 체인인 파이브 가이즈의 경우 햄버거 가격이 11.29달러부터 시작한다. 크기가 작은 햄버거 기준으로는 9.09달러부터다. 감자튀김, 음료수까지 시키면 햄버거 세트 하나당 20달러를 훌쩍 넘는다. 햄버거 세트로 점심 한끼를 때워도 3만원 가까이 든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플레이션이 치솟으면서 식품 물가 역시 급등한 여파다. 맥도날드에 따르면 팬데믹 직전인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지난 5년간 제품 가격이 최고 40%까지 올랐다. 빅맥은 21%, 맥너겟 열 조각 세트 메뉴는 28% 뛰었다.
최근 가격 인하에 나선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은 맥도날드 뿐만이 아니다. 버거킹, 웬디스 역시 초저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버거킹은 샌드위치, 감자튀김, 치킷 너겟, 음료수로 구성된 5달러 세트 메뉴를 내놨다. 웬디스 역시 샌드위치, 감자, 계란으로 구성된 아침 식사 세트 메뉴를 단돈 3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급등하고, 팬데믹 기간 쌓였던 초과저축이 소진되며 외식을 줄이려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긴 탓이다. 전미식당협회(NRA)에 따르면 식당을 찾는 고객 수는 14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외식비 부담에 집밥 비중을 높이는 추세다. 이에 비용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틈타 가격을 인상해 온 패스트푸드 기업들도 매출 확대 차원에서 결국 가격 인하 경쟁에 들어갔다. 앞서 크리스 캠프친스키 맥도날드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4월 컨퍼런스콜에서 "저렴한 가격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미국 인플레이션이 둔화되고 있지만 이미 생활 물가 전반이 크게 뛰어 소비자들은 거의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11월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인 바이드노믹스에 유권자들이 인색한 평가를 내리는 원인도 인플레이션이다. 물가 급등에 미국인들은 외식비는 물론 장바구니 지출까지 줄이는 실정이다. 미국 농업부 내부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미 가계의 식료품 비용 지출은 전년 대비 평균 3.1%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장조사업체 닐슨IQ도 미국 소비자들이 지난 1년간 소매점에서 구입한 품목이 2480억개로 1년 전과 비교해 30억개 줄었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에 2000개 가량의 매장을 둔 타깃은 최근 유제품, 고기류, 빵, 과일, 채소 등 식료품을 포함해 5000개 품목의 가격을 낮췄고 월마트 또한 약 7000개 제품의 가격 인하를 발표했다.
맥도날드가 쏘아 올린 5달러 햄버거 세트 실험도 이 같은 가격 인하 움직임의 연장선에 있다. '7000원의 행복'을 주는 맥도날드의 실험은 일단 한 달간 지속된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얇아진 지갑과 소비 둔화 조짐에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리기 위한 기업들의 가격 인하 고민은 이미 시작됐다. 패스트푸드 공룡인 맥도날드의 결단이 업계 전반의 초저가 경쟁을 자극할 지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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