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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홀린 한국 옥장 "손가락 크기 어보, 순식간에 동났죠"[K장인시대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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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예술성과 손기술…김영희 옥장 보유자
가족과 국립박물관 유물도 너끈히 복원·수리
손가락 크기 어보 제작…새로운 응용 길 열어
"우리 공예 응용 가능성↑…새로운 문화 시작"

과거 귀금속 공예품은 사회적 신분이 높은 소수 계층만 소유했다. 현대 사회도 다르지 않다. 1980년대부터 부유층이 본격적으로 수집했다. 계기는 해외여행 자유화. 정부가 1983년부터 50세 이상 국민에게 200만원을 1년간 예치하는 조건으로 관광 여권을 발급했다. 상당수는 돌아오는 길에 귀금속 공예품을 가져왔다. 국제수지가 흑자로 전환하고 생활 수준이 나아지면서 사치품을 사들이는 경향이 강해졌다.


국가무형유산 '옥장' 보유자로 인정 받은 옥 공예 장인 김영희씨가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국가무형유산 '옥장' 보유자로 인정 받은 옥 공예 장인 김영희씨가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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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공들이 모여 있던 서울 소공동 등은 북새통을 이뤘다. 해외 공예품 같이 제작해달란 주문이 밀려들었다. 세공들이 이리(현 익산)에 개척한 귀금속·보석 수출 공업단지도 분주하기는 매한가지. 일부 귀금속 공예품은 암암리에 국내 시장에 유입돼 거래됐다. 정부가 1991년 보석 수입을 전면 자유화하기 전까지 활개 쳤다.

지난 4월 국가무형유산 옥장 보유자로 인정된 김영희는 당시 공업단지에서 옥 가공 기술을 지도했다.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등으로 만든 현대 공예품이 인기를 끌었으나 한눈팔지 않았다. 맑고 영롱한 결정체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예부터 옥은 고귀함을 상징했다. 섬섬옥수, 옥구슬, 옥에 티, 옥체 같은 말이 생겼을 정도다. 그만큼 가격이 높고 다루기도 어렵다. 기본 공정만 채석, 디자인, 절단, 성형, 세부 조각(구멍 뚫기·홈파기), 광택 여섯 가지다. 남다른 예술성과 손기술이 요구된다.


국가무형유산 '옥장' 보유자로 인정 받은 옥 공예 장인 김영희씨가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옥을 만지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국가무형유산 '옥장' 보유자로 인정 받은 옥 공예 장인 김영희씨가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옥을 만지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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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는 옥은 물론 금속, 천, 돌까지 자유자재로 다룬다. 분업할 기술자가 부족해 모든 공정을 도맡으면서 달인 경지에 올랐다. "조상들처럼 분업화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요. 어찌어찌 섭외해도 따로국밥이 되기 쉽고요. 몇 번 시도했는데 성이 차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가족과 호흡을 맞추고 있어요. 아들 (김)청운이가 제 기술을 익히고 있죠. 아내(서울 무형문화재 매듭장 신옥순)가 침선과 매듭을 담당하고요. 국립박물관 유물을 너끈히 복원·수리할 만큼 손발이 척척 맞아요."

수작업이라서 생산성은 낮은 편이다. 하지만 수요는 계속 늘어난다. 최근에 미국 등 해외에서도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과거에는 한국인 이민 2·3세대가 많이 찾았어요. 집안에 옥 향로 등을 진열해 정체성을 정립하려 했죠. 요즘은 외국인들의 문의가 많아요. 특히 조선 왕실 문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죠. 공예와 복식이 한국의 역사라는 걸 아는 거예요. 제가 옥 기술에 매달려온 이유도 같아요. 공예품은 왕실, 사대부 등 권력자들이 사용했던 생활용품이자 당시 최고 기술이 집약된 작품이에요. 우리가 재현하고 복원하고 재창출해야 할 자산이죠."


국가무형유산 '옥장' 보유자로 인정 받은 옥 공예 장인 김영희씨가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국가무형유산 '옥장' 보유자로 인정 받은 옥 공예 장인 김영희씨가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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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는 2015년 영국에서 지대한 관심을 체감할 수 있었다. 주영국 한국문화원에서 주최한 '한국공예전: 사람, 장소, 이야기'에 인파가 몰려 영친왕(1897~1970) 일가 복식과 장신구류에 찬사를 보냈다. 봉황 모양의 대봉잠과 앞꽂이를 비롯해 백옥국화 앞꽂이, 쌍가락지, 매죽비녀, 초롱비녀, 호도비녀 등이다. 한일 간 체결된 협정에 따라 1991년 10월 반환된 유물들을 옥, 진주, 산호, 비취모, 은, 순금 등을 사용해 하나하나 복원했다.


"영친왕비 대수머리(궁중 의식에서 왕비가 대례복 차림에 한 머리모양)를 이용한 황후 대례 퍼포먼스에 영국 박물관 관장들과 큐레이터들이 열광하더라고요. 자부심에 사명감이 더 투철해졌죠. 귀국해서 청운이를 못살게 굴었어요. '게으르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죠(웃음)."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세종 상시호 금보유소가 전시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세종 상시호 금보유소가 전시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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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는 이전에도 다양한 보패(寶貝)를 세공하며 폭넓은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영화 '황진이',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등의 장신구 제작이 대표적 예다. "일반 사극 장신구를 요청받았다면 하지 않았을 거예요. 당시 젊은이들 성향을 반영해 연출하겠다고 해서 수락했죠. 실질적 고증 대신 미술·의상 감독과 협의해 콘셉트를 잡았어요. 반응이 꽤 좋더라고요. 한류 열풍을 타고 널리 퍼졌는지 해외에서도 많이들 알아봤죠. 재현과 복원, 복제에만 매달려온 저로선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명성황후 추상존호 옥보(왼쪽)과 영친왕비 옥규가 전시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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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왕실의 권위와 존엄성을 상징하는 어보(御寶)로도 새로운 길을 열었다. 2018년부터 2년간 명성황후 추상존호 옥보 등을 손가락 크기로 다수 제작했다. 국가유산청과 한국조폐공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공동 기획한 '조선의 왕실 어보 기념 메달' 시리즈를 통해서다. 완제품을 확인한 관계자들은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명성황후 추상존호 옥보(일종의 도장, 인장)를 1/30 크기로 재현한 작품에 도장 손잡이 역할을 하는 용은 물론 붉은 인끈, 위변조를 막는 잠상(숨은 이미지)까지 정교하게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재질별 수량은 금(37.5g)이 300개(308만 원), 금도금(31.1g)이 500개(38만5000원), 은(31.1g)이 1000개(29만7000원)였다. 한국조폐공사 쇼핑몰에 구매 창이 열리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영친왕 일가 장신구가 전시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영친왕 일가 장신구가 전시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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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순식간에 동이 나더라고요. 다들 컴퓨터 앞에 앉아 선점하려고 기다렸대요. 저도 겨우 구해서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죠. 사실 사서 고생한 거예요. 재료 확보부터 쉽지 않거든요. 금이나 은을 마트에서 팔진 않잖아요(웃음). 억 단위로 매입하다 보니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걸 알면서도 해내고 싶었어요. 우리도 돈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마음먹으면 이보다 더한 작품도 만들 수 있어요. 고생길이 보여서 주저할 뿐이에요."


김영희는 이제 해외시장을 두들긴다. 옥장 보유자로 인정된 만큼 기념비적 성과를 남겨 후배들이 나아갈 길을 터주고자 한다.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계기만 들려줬다. 현대적 감각을 접목한 새로운 전통의 예고였다.


국가무형유산 '옥장' 보유자로 인정 받은 옥 공예 장인 김영희씨가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국가무형유산 '옥장' 보유자로 인정 받은 옥 공예 장인 김영희씨가 30일 경기 파주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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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의 한 현대 작가가 제가 운영하는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에 작품을 하나 기증했어요. 조선의 여성 장신구를 응용해 만든 공예품이었죠.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라며 감탄했어요. 그가 왜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강행했을까요. 그만큼 우리 공예품의 응용 가능성이 큰 거예요. 기능이 같더라도 기법은 달라지는 게 세상 흐름이더군요. 옥 기술을 53년 연마한 저라도 배울 건 배워야죠. 그게 새로운 문화의 시작일 수 있으니까."





파주=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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