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윤석열 비호감 공생구조
정당이 공당 아닌 권력 카르텔
"민주주의 정신과 규범을 따르지 않는 전제자가 등장하면 230년 이상 축적돼 온 미국의 민주주의도 위험에 빠지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이 만들고 있는 미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다룬 5월16일자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내용이다. 진실과 무관한 권력 게임의 정치로 ‘탈진실의 정치’라는 시대적인 개념도 만들게 했던 트럼프식 정치다. 최근에는 성추행 관련 34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평결을 받았다. 트럼프는 부패한 판사들이 조작한 판결이라며 진짜 판결은 11월 대선이 될 것이라고 오히려 큰소리쳤다.
평결 이후 강경 지지 세력의 후원금은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반면 진보적 운동단체인 ‘무브온(MoveOn)’은 트럼프 사진에 ‘중범죄자(felon)’라고 붙인 스티커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호감도가 더 떨어지는 분위기라지만 여전히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로 조사되고 있다. 경쟁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 또한 지지가 시원찮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호감 세력끼리의 경쟁이 만들고 있는 비호감의 공생 정치, 우리에게도 익숙한 현실이다. 압축적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에도 성공한 보기 드문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근래에는 K-팝, 한류 등 문화적으로도 주목받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 우리의 정치는 최악이다. 최소한의 정치적 명분과 윤리마저도 실종된 민낯의 권력투쟁이 한국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정당이 공동체를 대변하는 공당이 아니라 권력 이권의 카르텔 조직이 돼버렸다. 카르텔 정당의 사법적 책임을 둘러싼 입법 공방과 정치적 공세가 우리 국회의 민생 입법을 압도한다.
미국과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감이 평행이론처럼 전개된다. 트럼프, 이재명, 두 사람 다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으면서도 각 나라의 정치를 휘젓고 있다. 모두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다. 양쪽 다 배타적 진영정치를 주도하는 강경 세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트럼프에게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그룹과 프리덤코커스가 있다면, 이재명에겐 개딸과 더민주혁신회의가 있다. 트럼프-바이든과 이재명-윤석열 모두 비호감의 공생구조를 가진 점도 아주 비슷하다. 트럼프의 문제점을 바이든의 비호감이 상쇄해주고 있는 것처럼,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반민주적 사당화를 윤 대통령의 저조한 지지율이 물타기 해주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방북 비용대납의 제3자 뇌물죄로 기소되면서 총 4건의 재판을 받게 됐다. 추가기소 가능성도 남아있다. 이 대표는 검찰의 수사와 기소 내용이 조작된 소설이라 주장한다. 관련 사건의 혐의들이 재판 결과로 확인돼도 인정할 수 없다며 사법적 판단까지 부정한다. 트럼프의 대응 판박이다. 미국과는 차원이 다르게 우리가 더 심각하다. 법치의 토대를 닦는 국회가 오히려 범법자들을 방탄하는 소도처럼 돼 있다. 윤 정부의 남은 3년 못지않게 이제 시작하는 22대 국회가 암담하다. 의원들의 역할 기대와 자질 수준도 걱정이다. 이른바 대장동 변호사들이 거의 전부 원내 진입에 성공해 사법리스크의 정치적 방어에 직접 나서고 있다.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유형의 의원도 더 많아졌다. 제왕적 당원정당은 이재명 대표의 보위 조직화에 거리낌이 없다. 어느 최고위원은 이 대표를 ‘민주당의 아버지’로 칭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무 착한’ 정치인의 탄압에 대한 방어와 개혁 조치라고 항변하지만 대의제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까지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미 자신의 대의 권력 기반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만흠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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