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아이돌 따라 명품 사는 청소년들
과거에도 유행 있었지만 SNS로 속도·전파력↑
"팔로워수가 곧 권위…유명인 명품 소비 모방"
"아이돌 앰배서더로 미래 고객 확보 전략"
직장인 최재인(31)씨는 올해 초 고등학생 조카로부터 명품 지갑을 사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다. 최씨는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었더니 뉴진스 하니가 광고하는 구찌 지갑을 사줄 수 있냐고 하더라"며 "부모의 반대로 사주진 못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다 명품 지갑 하나씩 갖고 있다는 조카의 말이 계속 생각나 미안했다"고 털어놨다.
유명 인플루언서, 연예인의 소비를 따라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른바 '디토소비'다. 연예인의 인기 척도 중 하나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 아이템의 유무이듯이, 과거에도 유행은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행, 인플루언서 증가로 동조 소비의 속도와 전파력이 더 강해졌다고 분석한다.
디토소비 경향은 연령대와 관계없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11월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명품 소비 관련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1.0%가 '이왕이면 유행하거나 트렌드인 브랜드 제품을 구입한다'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20대 49.2% ▲30대 34.8% ▲40대 37.2% ▲50대 42.8% 등이다. '주위 사람들이 많이 소비하는 브랜드를 구입하는 편'이라고 답한 비율도 33.9%로 나타났다.
이러한 소비 경향은 명품 소비 증가에서도 엿볼 수 있다. 글로벌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인의 명품 소비는 전년보다 24% 증가한 168억달러(약 23조원)로, 이를 1인당으로 환산하면 325달러(약 44만원)이다. 미국 280달러, 일본 210달러, 중국 55달러 보다 많은 것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많다.
보고서는 "명품업체들이 유명 인사를 활용해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면서 "거의 모든 한국의 유명 연예인이 명품 브랜드의 앰버서더(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유명 인사를 활용한 명품 마케팅이 저연령층에 보다 강한 효과를 미친다는 것이다. 명품을 구매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구매 여력이 적은 10·20대의 무리한 명품 소비는 부모 혹은 미래의 본인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명품 브랜드들이 어린 연령대의 앰배서더를 기용해 미래의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봤다. 허 교수는 최근 SNS의 유행으로 유행 소비 경향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파급력과 전달력이 큰 SNS를 통해 아주 빠르게 동조 소비가 일어난다"며 "특히 10·20대가 SNS를 통한 정보 공유가 빠르다 보니 그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보인다. 구매력은 낮지만 부모의 도움을 얻거나 스몰럭셔리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아이돌그룹 멤버를 앰배서더로 발탁하는 명품 브랜드에 대한 비난도 나온다. 10·20대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K팝 그룹 아이돌 멤버들이 브랜드를 홍보하면서 명품 구매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2022년 데뷔 당시 모든 멤버가 미성년자였던 걸그룹 뉴진스는 데뷔 4개월 만에 모든 멤버가 샤넬, 디올, 버버리 등 유명 명품 브랜드 앰배서더로 선정됐다. 그중에서도 막내 혜인은 2008년생으로, '최연소 루이비통 앰배서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 역시 18세 나이로 명품 브랜드 미우미우 앰배서더로 선정돼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전문 지식이 강한 힘, 권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SNS 팔로워 수가 곧 권위인 시대가 됐다"며 "SNS에서 유명한 인플루언서나 방송에 많이 나오는 연예인들의 말과 행동, 소비가 권위 효과를 가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어린 연령층일수록 권위에 취약한 경향을 보이는데, 특히 청소년들이 인플루언서의 말과 행동, 소비를 모델링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보인다"며 "유명인의 소비를 따라함으로써 그와 같은 집단에 소속돼있고 같은 지위를 갖고 있다고 인정받으려는 동조심리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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