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게시 전화번호 유출돼도 처벌 어려워
개인정보 중요성 사회적 인식 개선돼야
27일 오후 5시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길 한 쪽에 주차된 자동차의 앞 유리를 통해 차량 주인의 개인 전화번호와 거주지가 적힌 종이(왼쪽)와 명함이 보인다.[사진=심성아 기자]
'개인정보처리자' 미해당 시 처벌도 어려워
일상에서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일이 예삿일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제재할 제도가 마땅치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분쟁조정 사건 처리 건수는 2019년 302건, 2020년 297건, 2021년 417건, 2022년 551건, 2023년 666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이 가운데 ‘동의 없는 개인정보 수집’의 비중이 매년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지난해의 경우 31.2%가 이런 부류의 분쟁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반 개인이 타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처벌하기가 까다롭다. 개인정보 보호법에는 ‘개인정보처리자’가 처리하는 개인정보에 대한 원칙만을 규정하고 있어서다.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정보 파일을 운용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공공기관, 법인, 단체 및 개인 등이 아닌 자가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는 해당 법의 잣대를 들이밀 수 없다.
지난 3월 서울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남성 두 명이 자동차에 적힌 개인 전화번호를 수집하다가 경찰에 잡혀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분양사무소를 홍보하기 위해 연락처를 수집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나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에 대한 혐의가 아닌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건조물침입) 혐의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정보 보호법을 적용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어 공동건조물침입 혐의로만 송치했다”고 설명했다. 관리되지 않는 공터나 갓길 등에 주정차 된 차들은 비슷한 범죄에 무방비 상태이다.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개인 정보 침해 사례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청이 집계한 2022년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발생 건수는 2331건(검거 건수 1676건)이다. 하지만 양진영 법무법인 민후 대표 변호사는 “개인정보 보호 위반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신고해도 처벌이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정확한 피해 규모나 손해배상 액수를 추산하기도 어렵고 보통 분쟁조정을 신청해서 결정이 나기까지 3~4개월 걸리고 고발하는 경우엔 6개월 이상 시간이 걸려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배상을 받기가 어려운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개인정보가 한 번 유출되면 디지털상에서 복사하고 붙여넣는 기능으로 계속 돌아다니며 1차, 2차 가공을 거치기 때문에 정보를 처음 수집하고 판매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며 “피해자들은 자신의 정보가 어디서 유출됐는지조차 모른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 노출돼도 39%는 "대응 안 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경각심이 적은 것도 문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2022년 개인정보 침해 경험자를 대상으로 사후 조치에 관해 물은 결과 ‘대응하지 않았다’라는 응답이 39.2%나 됐다. 특히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응하지 않은 이유로는 ‘피해 정도가 크지 않아서’가 39.4%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피해구제 신고·상담이 번거롭고 귀찮아서(29.4%)’ ‘피해구제 기관이나 방법·절차를 몰라서(21.4%)’ ‘피해구제 신고·상담이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9.4%)’ 순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황 교수는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정보는 본인의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간주할 수 있어 제3자가 수집했다고 해서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으로 처벌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자신의 개인정보를 소중히 여기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 변호사도 “개인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먼저 높아져야 한다”면서도 피해자들이 피해를 배상받기 위해 겪어야 하는 비용과 시간과 비교해 배상이나 처벌의 수위가 낮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피해자들이 보통 받는 배상이 20만~40만원에 불과한데, 이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적다”며 “처벌 수위를 높여야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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