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LG유플러스와 카카오모빌리티가 전기차 충전소 운영업(CPO) 합작 설립을 신청한 건에 대해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공정위는 두 회사가 합작사를 설립하더라도 시장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다. 대신 두 회사가 힘을 모음으로써 전기차 시장에서 혁신적인 서비스 경쟁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전기차 충전 시장은 아직 초창기라 뚜렷한 선두 기업이 출현하지 않고 있다. 대기업들이 잇따라 시장에 진출하면서 선점 경쟁도 치열하다. 테슬라,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들도 직접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 업체는 난립하고 있는데 소비자들의 불만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아직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충분치 않기 때문에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의 주유소보다 더 많은 충전소가 필요하다. 전기차마다 다른 방식과 규격을 채택하고 있는 점도 혼란을 가중하는 요인 중 하나다.
GS·SK·LG·롯데…충전 시장에 대기업들 잇단 진출
전기차 충전기는 충전 속도에 따라 완속, 급속, 초급속으로 나뉜다.
완속 충전기는 전기차에 내장된 탑재형 충전기(OBC·On-Board Charger)를 이용한다. 외부 전원으로부터 교류의 전원을 공급받아 완속 충전기를 거쳐 차량 내부의 OBC에서 교류를 직류로 변환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식이다. 3~7킬로와트(㎾)의 전력으로 공급되며 완전히 충전되는 데 8시간 정도 소요된다.
급속 충전방식은 OBC와 무관하게 차량 밖에 설치된 급속 충전기에서 교류를 직류로 변경해 직접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식이다. 급속 충전은 50~200㎾의 전력으로 충전하며 30~60분 정도 걸린다. 초급속 충전은 300~350㎾의 전력으로 충전하며 20분 안팎이 소요된다.
완속 충전기는 주택이나 아파트 등 주거 시설에 주로 설치된다. 급속 충전기는 고속도로 휴게소, 공공기관 등 외부 장소에 설치된다. 전기요금은 완속의 경우 100km당 1100원, 급속은 약 2700원 정도다.
전기차 충전기는 또 설치 유형에 따라 스탠드형, 벽면 부착형(벽부형), 이동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스탠드형은 충전기가 단독으로 설치돼 있는 것을 말하며 벽면 부착형은 충전기가 패드 형태로 벽에 부착된 형태다. 이동형은 자동차 운전자가 직접 소지하고 다니면서 어디서든 콘센트에 꽂아 사용할 수 있는 충전기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3년 12월 말 현재 국내 보급된 충전기수는 총 30만5309기다. 이 중 완속 충전기가 27만923대로 전체의 88.7%를 차지한다. 급속 충전기는 3만4386기로 11.3%다. 충전기 보급은 2019년 4만4792대였으나 2023년 30만기를 돌파하며 6.8배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소비자들은 충전 인프라 부족을 호소한다. 정부는 전기차 충전기를 2025년 59만기, 2027년 85만기에 이어 2030년 123만기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다.
국내 충전기 시장은 충전기 제조사와 충전소 운영업자(CPO·Charge Point Operator)로 나눌 수 있다. 주로 충전기 제조사가 CPO에 충전기를 공급하는 형태이지만 경우에 따라 제조사가 직접 설치·운영하기도 한다.
충전소 시장은 과거 중소기업들이 이끌었으나 전기차 시장이 급속히 확대하면서 최근 몇 년간 대기업들이 잇따라 시장에 진입했다. 주로 기존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신규 진입 기업들 중에는 정유사나 정보통신 관련 기업들이 많다.
국내서 가장 큰 전기차 충전 업체는 GS그룹이다. GS그룹은 GS차지비, GS칼텍스를 통해 충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GS에너지는 2022년 7월 전기차 충전 브랜드인 GS커넥트를 출범한 데 이어 차지비(ChargeV)까지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차지비는 국내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제공했던 기업이다. 차지비는 2024년 1월 GS커넥트를 합병해 GS차지비가 됐다. GS차지비는 2024년 1월 기준 전국에 4만5000개의 충전기를 운영, 2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파악한 2023년 7월 기준 점유율은 16.6%였다.
SK그룹은 SK일렉링크, SK에너지, SK시그넷 등의 계열사를 통해 전기차 충전 사업을 벌이고 있다. SK시그넷은 2016년 시그넷시스템에서 인적 분할해 설립한 기업(시그넷이브이)으로 2017년 코넥스에 상장했다. 2021년 SK가 시그넷 지분 52.1%를 인수하며 SK그룹사로 편입됐다. 2011년 국내 최초로 일본 차데모 인증을 시작으로 현대차, 기아, BMW, 포드, 닛산, 폭스바겐 등에 충전기를 납품하고 있다. 국내보다는 해외 매출 비중(2022년 기준 82%)이 높다.
SK일렉링크는 SK네트웍스가 인수한 급속 충전 서비스 업체인 에스에스차저가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이 밖에 SK E&S는 2022년 미국 전기차 충전 기업인 에버 차지를 인수하기도 했다. SK브로드밴드가 운영하던 전기차 충전 브랜드 '홈앤서비스'는 2024년 3월 차지비에 양도했다.
LG그룹은 LG전자와 LG유플러스를 통해 전기차 충전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LG전자는 2022년 GS와 함께 애플망고를 인수하며 전기차 충전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분 비율은 각각 60대40이다. 애플망고는 2023년 5월 하이비차저((HiEV Charger)로 이름을 바꿨다.
LG유플러스도 2023년 초 'EV 충전사업단'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전기차 충전 서비스 '볼트업(VoltUP)을 선보이며 전기차 충전 사업에 진출했다. LG헬로비전의 전기차 충전 서비스인 '헬로플러그인'을 인수해 서비스를 일원화했으며 카카오모빌리티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면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2022년 롯데정보통신이 이브이시스(EVSIS, 옛 중앙제어)를 인수하면서 전기차 충전 시장에 진출했다. 이브이시스는 1987년 설립된 국내 최초 충전기 제조 전문 업체로 SK시그넷, 채비(CHAEVI, 옛 대영채비)와 함께 국내 전기차 충전기 제조 '빅3'로 꼽히는 회사다.
이 외에 중견·중소 기업으로는 파워큐브, 에버온, 스타코프, 휴맥스이브이, 이지차저, 플러그링크, 채비 등이 대기업들과 경쟁하며 충전소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충전 사업자 벌써 500개 돌파…2030년 29조 성장
국내 전기차 충전사업자로 등록된 곳은 2023년 말 현재 507개까지 증가했다.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에 따르면 2018년 1곳이었던 전기차 충전 사업자(순증 기준)는 2019년 110곳, 2020년 180곳, 2021년 272곳, 2022년 392곳 등 급속히 증가했다. 2022~2023년 2년간 무려 235개가 늘었다.
기업들이 이처럼 적극 나서는 것은 충전소 시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충전기 설치 비용은 완속이냐 급속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급속 충전기 설치 비용은 대당 4000만~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이차전지 시장 조사 업체인 SNE리서치는 우리나라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은 2022년 2조1000억원에서 연평균 36% 성장해 2030년에는 29조3000억원(완속 120만대·급속 200만대 기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전기차 충전기는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4년 4월 발간한 '글로벌 전기차 전망(Global EV Outlook) 2024'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현재 전 세계 전기차 공용 충전기(public charging point)는 400만기( 완속 300만기·급속 100만기, 정부 목표 기준)다.
이 숫자는 2030년 1500만기(완속 900만·급속 1500만)로 275% 증가할 전망이다. 2035년에는 2300만기(완속 1400만기·급속 900만기)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2023년 대비 약 6배 정도 증가하는 셈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프리시던스리서치(Precedence Research)는 전 세계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 규모는 올해 459억1000만달러(약 62조원)에서 연평균 23.13% 성장해 2033년 2744억9000만달러(약 373조원)까지 확대할 것으로 전망했다.
車마다 나라마다…각기 다른 충전 규격
전기차 운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충전 규격이 차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내연 기관차는 경유나 휘발유만 구분될 뿐 어느 주유소를 가든 충전할 수 있는데 비해 전기차는 규격이 다르면 바로 충전할 수 없다. 물론 어댑터를 이용할 수 있지만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전기차 충전기 규격은 AC단상(5핀), AC3상(7핀), 차데모(CHAdeMo), DC콤보(Combined Charging System-1·2), GB/T, NACS(북미충전표준·North American Charging Standard) 등이 있다.
AC단상은 5개의 핀으로 구성돼 있으며 한국, 미국, 일본 등에서 사용하는 완속 충전 규격이다. 교류(AC) 전원을 이용해 7㎾(220V/32A) 급으로 충전한다. AC3 상은 3상의 교류를 지원하는 7개의 핀으로 구성돼 있으며 유럽에서 많이 사용한다.
DC콤보는 급속 충전 규격으로 CCS1과 CCS2로 나뉜다. 콤보(Combo)라는 이름은 직류와 교류를 동시에 지원한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1개의 충전구에서 완속과 급속으로 충전할 수 있다. CCS는 '복합충전시스템(Combined Charging System)'의 약자다.
CCS1은 5핀의 AC 단상에 DC 연결핀이 연결돼 있는 구조로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주로 사용한다. CCS2는 7핀의 AC3상에 DC 연결핀이 연결돼 있는 모양으로 유럽에서 많이 사용한다.
차데모는 2010년 도쿄전력이 개발한 일본 중심의 급속 충전 규격이다. 최근에는 DC콤보에 밀려 점유율이 하락하는 추세다. 중국은 자체 충전 규격인 GB/T를 채택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공동으로 새로운 급속충전 규격인 차오지(Chaoji)를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차오지는 500㎾ 이상의 고출력을 달성하고 차데모와 GB/T, DC콤보와 호환성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우리나라는 제조사별로 차데모, CCS1, AC 단상을 혼용해 사용했으나 국가기술표준원은 2017년 12월 CCS1으로 표준을 통일했다. 국내 자동차 기업들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 캐나다에서 CCS1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주요 배경이 됐다.
NACS는 '북미충전표준'으로 번역되지만 실제로는 테슬라가 2012년 자사 전기차 전용으로 개발한 충전 기술이다. 테슬라는 2022년 11월 자사 전기차뿐 아니라 경쟁사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이 기술을 개방하면서 NACS라는 이름을 붙였다.
테슬라가 자사 기술을 오픈한 것은 충전 시장의 점유율을 확대함과 동시에 미국 정부가 주는 보조금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미국 정부는 전기차 충전소를 확대하기 위해 2022년부터 5년간 75억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다. 당초 DC콤보 규격이 주 대상이었지만 테슬라가 충전기를 개방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DC콤보는 차량에서 급속/완속이 분리돼 있지만 NACS는 급속과 완속 라인을 공용으로 사용한다. NACS는 CCS1·2에 비해 크기가 작고 충전방식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NACS를 지원하는 테슬라 충전기(슈퍼차저)에서는 버전에 따라 최대 150㎾~250㎾로 충전할 수 있다.
슈퍼차저의 숫자는 테슬라의 공격적인 행보 덕에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슈퍼차저는 2018년 6월 1만기를 돌파한 이후 1년에 약 1만기씩 증가해 2023년 9월에 5만기를 돌파했다. 슈퍼차저는 미국 충전기의 약 60%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점유한다. 2022년 10월과 11월에는 유럽과 중국에서도 설치대수가 각각 1만기를 넘어섰다.
테슬라가 NACS 개방을 발표한 이후 2023년 5월 포드가 NACS를 채택하겠다고 발표했고 GM도 곧 뒤따랐다. 비록 경쟁사이지만 슈퍼차저를 이용하면서 자사 전기차 판매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했다.
결국 국제자동차기술자협회(SAE international)는 2023년 6월 NACS의 표준화 계획을 발표했고 그해 12월 NACS는 CCS1과 함께 미국의 충전 표준 규격으로 인정받았다.
애플과 달랐던 테슬라…충전, 천하통일 이루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업들은 표준 전쟁을 벌이곤 했다. 비디오포맷에서 VHS(소니)와 베타맥스(마쓰시타) 방식이 벌인 싸움은 아직도 회자된다. 자동차 충전 규격을 둘러싼 표준 전쟁은 현재 진행형으로 승자가 가려지지 않았다.
전기차 충전 표준 싸움에서 테슬라는 종종 애플과 비교됐다. 애플은 2012년 아이폰5를 출시할 때부터 자체 충전 방식인 라이트닝(Lightning)'을 채택해왔다. 하지만 다른 IT기기와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지속됐고 결국 아이폰15부터는 안드로이드폰과 마찬가지로 USB-C 타입을 적용하고 있다.
테슬라는 애플을 반면교사로 삼은 듯하다. NACS를 개방한 결과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는 CCS1을 밀어내고 있다. 2024년 5월 현재 NACS 채택을 발표한 자동차 제조사는 GM, 포드, 도요타, 리비안, 볼보, 폴스타, 닛산, 메르세데스-벤츠, 재규어랜드로버, 피스커, 스텔란티스, 현대차, 폭스바겐, BMW 등 대부분이다.
이들 기업은 2025년경부터 출시하는 전기차에 NACS 규격을 적용할 계획이다. 그전까지는 매직독(magic dock)이라는 어댑터를 통해 슈퍼차저를 이용할 수 있다. 테슬라는 2023년 11월에 한국 시장에서도 매직독을 지원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북미 충전 시장에서는 NACS가 우위를 점하면서 CCS1과 공생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기존 완성차 기업들은 NACS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그렇다고 테슬라에 백기투항한 것도 아니다.
현대차를 비롯해 BMW, GM, 혼다, 기아, 메르세데스-벤츠, 스텔란티스 등 7개 사는 2023년 7월 북미 전역에 충전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충전 동맹'을 결성하고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합작사인 아이오나(IONNA)는 2024년 2월 공식 출범했다.
아이오나는 북미 전역에 3만개 이상의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할 계획인데 NACS와 CCS1을 동시에 지원할 계획이다. 현실적으로 NACS를 포용하면서도 CCS1의 입지도 계속 강화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미국 이외 지역의 상황도 간단치는 않다. 유럽에서는 여전히 CCS2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내 판매되는 전기차는 모두 자체 충전 규격인 GB/T만 적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당초 북미 표준을 따라 전기차 충전 규격을 CCS1으로 정했던 한국의 고민은 앞으로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존 인프라 설치 매몰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쉽게 규격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한국자동차연구원, 전기차 급속충전 규격 표준화 동향과 시사점, 2023.3.27
키움증권리서치센터, 전기차 충전 인프라, 2023.4.3
동아일보, “전기차 충전 6조 시장 잡아라” LG-GS-SK-롯데 뜨거운 경쟁, 202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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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 [‘급성장’ 전기차 충전 인프라] 급속 충전 인프라 활성화 방안은, 2023.2.21
electrive, Tesla NACS to become an official charging standard in North America, 2023.12.20
SAE international, SAE to standardize Tesla NACS charging connector, 2023.6.27
전자신문, 북미 충전 표준으로 떠오른 테슬라 NACS…우리나라의 향방은, 2023.9.13
hyundai, High-Powered EV Charging Network, IONNA, Begins Operations in North America, 2024.2.10
공정거래위원회, LGU+ 및 카카오모빌리티의 회사 설립 승인, 2024.4.29
IEA, Global EV Outlook 2024, 2024.4
The verge, All the news about EV charging in the US, 2024.5.22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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