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KPMG 최초의 여성 딜 파트너 김유미 상무
딜 경력만 17년…SK하이닉스·클래시스 등 M&A 경험
"매수·매도 양측에 돈 벌어주는 일…큰 보람"
1년 365일 중 330일 정도는 회사에 나와 야근했다. 10년 넘게 그렇게 지냈다. 즐기면서 하다 보니 보상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올해로 55주년을 맞은 삼정KPMG의 '여성 1호 딜 부문 파트너'라는 타이틀이다. 삼정KPMG 재무자문부문 김유미(44) 파트너의 얘기다.
김 파트너는 2017년 삼정 최초 여성 딜 파트너에 올랐다. 입사 10년 만이었다. 흔히 '딜 부문'으로 불리는 재무자문부문에는 약 700명의 인력이 근무한다. 일반 기업으로 치면 임원급에 해당하는 파트너는 55명이며, 이 중 여성이 4명(7.3%)이다. '4대 회계법인'으로 눈을 넓혀봐도 딜 부문 여성 파트너는 모두 합쳐 13명이다. 아직 여성의 사회 진출이 더딘 분야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삼정KPMG는 최근 5년간 딜 부문에서 평균 18%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성장의 핵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 파트너를 서울 강남구 파이낸스센터의 삼정KPMG 본사에서 만났다.
취미도 '경제 유튜브' 시청…즐기는 자는 못 이긴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공자의 논어에 나온 말이다. 김 파트너는 이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파트너가 되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다"며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즐기면서 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330일 야근'의 원동력은 바로 즐거움에 있었다. 쉴 때 즐기는 취미도 경제 뉴스를 보거나 경제 관련 유튜브 시청이다. 즐겨보는 채널은 '삼프로TV'를 꼽았다. "주말 포함 10년 넘게 365일 중에 330일 정도는 야근을 했고 최근에는 그 정도로 일하진 않는다"며 웃은 그녀는 "여기까지 온 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했다.
겉으로 보인 겸손함과 달리 김 파트너는 자본시장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달려왔다. 딜 부문 경력만 17년이며 그간 손을 거쳐 간 기업도 수두룩하다. "주말에도 회사에 가면 늘 보이는 사람"으로 통하며 얻은 결과물이다. 대표적으로 SK하이닉스와 매그나칩반도체, 롯데렌탈, 뉴욕팰리스호텔,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더존비즈온 등 다양한 산업의 기업과 카버코리아, 에이블씨엔씨, 클래시스, 이루다 등 화장품·헬스케어 분야의 기업이 있다. 김 파트너는 "화장품이나 미용, 헬스케어 등은 여성들이 주력 소비층이기 때문에 소비재 기업을 많이 맡는 편"이라며 "제품을 직접 써보고 의견을 얘기하면 많이들 좋아해 주신다"고 했다. 실적(트랙 레코드)이 쌓이다 보니 김 파트너의 경험을 믿고 일을 맡기는 경우도 제법 있다고 한다.
회계법인 딜 부문은 M&A 시장의 한축이다. 매수자 혹은 매도자 측의 의뢰로 고객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고의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세부적으로는 M&A 협상, 재무 실사, 부동산, 구조조정 등 4가지 파트로 나뉜다. 김 파트너는 주로 재무 실사 파트에서 활약했다. 회사 매출의 상승 가능성과 이익의 질을 따진다. 김 파트너는 "고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이라며 "매각 측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인수자를 발굴하러 다니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반대로 원매자 측에서 보면 실사와 평가로 회사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매도측과 협상을 통해서 가격과 조건을 유리하게 만드는 역할을 주로 한다"고 했다.
회의하면 여성은 나 혼자…"남자보다 5% 더 열심히"
김 파트너는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2년 반 정도의 수험 준비기간을 거쳐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패스했다. 2005년 안진회계법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뗀 뒤 2년 후 현재의 삼정KPMG로 이직했다. 삼정에 온 뒤로는 쭉 딜 부문에서 활약했다. 김 파트너는 "삼정의 딜 부문은 예전부터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딜 부문은 감사나 세무와 비교하면 '남초 현상'이 심한 분야다. 대면 접촉이 많고 '마케팅'으로 불리는 영업 요소도 있기 때문이다. 부장급으로 올라선 이후부터 파트너가 되기까지 그 직급의 여성은 항상 김 파트너밖에 없었다. 조언을 얻거나 레퍼런스로 삼을만한 여성 리더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녀는 "외롭기도 했지만,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김 파트너의 MBTI는 회계법인에는 드물다는 ENFP다. 재능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과거에 구애받지 않는 타입으로 분류된다.
회의실에 가면 늘 여성은 김 파트너 혼자였다. 워낙 눈에 띄기 때문에 그녀가 입을 떼면 회계법인, 법무법인, 매수자와 매도자가 유독 집중했다. 주목과 관심은 '양날의 칼'이었다. 김 파트너는 "여성뿐만이 아니라 소수자는 모두 겪는 문제"라며 "조금만 일을 잘해도 과도한 칭찬이 돌아오고, 반대로 못하면 '이래서 여자는 안돼'라는 과도한 비판을 듣는다"고 했다. '총성 없는 전쟁터'로 불리는 M&A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2가지 원칙을 마음속에 새겼다. "하나는 남을 칭찬하는 것, 다른 하나는 남자보다 5% 더 열심히 하자는 것이었다"고 했다. 시종일관 미소를 짓던 그녀에게 '외유내강'이 느껴졌다.
일과를 돌아보면 평일에는 잦은 술자리가 이어지며 주말에는 고객과 골프를 치러 나가는 경우도 많다. 김 파트너는 "하루에 미팅만 4~5건"이라며 "일주일에 만나는 사람이 70명 정도는 된다"고 했다. 과거엔 친분만으로 일을 맡기는 경우도 많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고 한다. 김 파트너는 "이제는 일을 잘하는 쪽에 맡기는 경우가 확실히 많다"며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고객의 니즈를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보람 넘치는 일, 여성들 야망 갖고 도전했으면"
딜 과정은 보통은 6~9개월, 길게는 1년이 넘게 걸린다. 김 파트너는 "여러 산업을 분석하는 것, 협상 과정에서 계약서를 검토하는 것 자체가 모두 재밌다"며 "딜이 종결돼서 공시될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사실 더 보람을 느끼는 부분은 따로 있다. 재무 실사를 통해 "이 기업은 도저히 M&A를 하면 안 되겠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고 고객이 이를 받아들였을 때다. 그녀는 "그런 회사 중에 나중에 보니 실제로 부도가 나거나 매출이 '반토막' 난 경우도 있었다"며 "고객의 피해를 예방한 셈이기 때문에 뿌듯함을 크게 느낀다"고 했다.
현재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M&A 시장에 대해서는 "아직 바닥이 오지 않았고 올해는 일단 지나 봐야 알 것 같다"며 "서로 눈높이가 달라서 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매도자는 예전에 높게 평가받은 가격을 원하고, 매수자는 시장 상황이나 금리를 고려해 더 낮은 가격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현재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딜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의 SK렌터카 인수,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 태영그룹의 에코비트 매각 등이다. 김 파트너는 "기업의 사업재편, 건설회사의 자금 마련, 국내외 재무적투자자(FI)의 경쟁력 있는 회사 인수 등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기업과 FI의 전략을 잘 보여주고 있는 딜"이라고 했다. 또한 "최근 미국·일본 지역 매출 증가에 힘입어 뜨고 있는 화장품이 M&A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업종 중 하나"라고 했다.
향후 진로로 딜 부문을 고민하는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간의 2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며 이렇게 답했다. "여자가 소수인 직업이니 솔직히 힘들어요. 힘든 시기를 견디려면 명확한 목표를 갖고 야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딜 부문 업무는 매도인에게는 현재의 돈을 벌어주고, 매수인에게는 미래의 돈을 벌어주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보람 있는 일이에요. 그만큼 매력 있는 일이기 때문에 많이들 도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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