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태료 부과 기준 ‘혐오감을 주는 행위’
자의적 해석 가능해 단속 현장서 혼란
지난 12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에서 용산구까지 이어진 경의선숲길. 해가 지자 6.3㎞ 길이의 이 철길공원에는 가벼운 겉옷을 걸친 시민들이 담소를 나누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한 손엔 간식, 다른 한 손엔 맥주캔을 들고 공원 벤치를 찾았다. 어떤 이는 소주병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1시간가량 공원을 돌아본 결과 대다수 시민이 음주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서울시가 지정한 ‘음주 청정지역’이다.
음주 청정지역은 음주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음주 후 소음이나 악취 등으로 다른 시민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되는 지역이다. 서울시는 2017년 ‘서울특별시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를 통해 서울숲, 남산공원, 월드컵공원 등 직영공원 22개소를 ‘음주 청정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2018년 4월1일부터 이 지역에서 음주 후 심한 소음이나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할 경우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12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 한 편에서 술을 마시는 시민들에게 공공안전관과 단속 직원이 음주청정지역에 대해 설명하고 자리 정리를 요청하고 있다.[사진=심성아 기자]
그러나 음주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닌 탓에 현장에서는 혼선이 자주 빚어진다. 시민들이 음주 청정지역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만난 이모씨(20)는 “오늘뿐만 아니라 종종 여기 와서 친구들과 돗자리 펴고 술을 마시곤 했다”며 “다른 사람들도 다 술을 마시기 때문에 음주 청정지역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6.3㎞에 달하는 경의선숲길을 통틀어도 음주 청정지역을 안내하는 표식은 단 1곳에만 설치돼 있을 뿐이다.
규정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주취자 스스로의 도덕성과 자제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계도 과정에서도 갈등이 빚어진다. 현장에서 직접 주취자를 계도하는 건 서울시에서 시설경비직으로 고용된 실무관들인데, 공무원 신분이 아닌 탓에 갈등이 빚어져도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되레 주취자들이 실무관들을 경찰에 신고하거나 심할 경우 고소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성면 서울시 경의선숲길 공공안전관(55)은 “실무관들은 공무원이 아니라서 공무집행방해가 적용되지 않아 계도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터치가 있었다며 시민이 고소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며 “시민과 갈등이 생기면 대부분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부 실무관들 사이에서는 단속권을 달라는 요구도 있으나 음주 청정지역에선 단속권을 줘도 사실상 실효가 없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주관적인 해석이 될 수 있는 조항들로 현장 혼란이 빚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구체적으로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나열하는 등 예측 가능성과 명확성이 드러나게 세부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게끔 하는 건 악법”이라고 진단했다.
서울시와 각 지방자치단체도 이런 현실을 인지하고 일부 지역을 아예 ‘금주 구역’으로 지정해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다.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음주폐해 예방과 주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조례로 다수인이 모이거나 오가는 관할구역 안의 일정한 장소를 금주 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게 돼 있다.
현재 서울 성동구 어린이꿈공원과 광진구 장독골 어린이공원, 동대문구 청량리역 광장, 중랑구 면목역광장 등이 금주 구역으로, 이 지역에서 술을 마시면 1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서울시도 이와 관련해 지난해 6월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을 의회에 상정해놓은 상태다. 기존 도시공원과 어린이놀이터는 물론 하천 연변의 보행자길, 청사, 어린이집, 유치원 등도 금주 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하천법에 따른 하천·강 구역’이 조례에 포함돼 논란이 일면서 여전히 계류 중이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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