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기준금리 연 3.50% 동결
작년 2월부터 10차례 연속 동결
물가 불안에 기준금리 인하 명분 약해져, 긴축기조 이어갈 듯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0%로 10차례 연속 동결했다. 고물가가 지속되는 데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예상 시점도 뒤로 밀리고 있어 한은의 통화긴축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연 3.50%)를 동결했다. 금통위는 지난해 2월부터 이날까지 10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물가 불안에 기준금리 인하 명분 약해져
기준금리 동결의 가장 큰 이유는 불안한 물가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지난 2월 3.1%를 기록한 데 이어 3월에도 3.1%로 두 달 연속 3%대를 기록했다.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2%를 한참 넘어서는 수치다.
올해 들어서 사과와 배,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를 끌어올리는 중이다. 지난달 사과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88.2% 상승해 통계작성이 시작된 1980년대 이후 가장 크게 올랐다. 배와 귤, 토마토, 파 등 다른 농산물 가격도 급등했다.
게다가 중동에서 군사적 갈등까지 커지면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대까지 오르는 등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는 중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과 한국 모두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3%대를 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면 물가가 다시 오를 수 있고 환율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금리를 동결해 물가를 잡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 상승률이 점차 둔화해 올해 말 2%대 초반에 가까워질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섣부른 긴축기조 선회가 정책 신뢰를 저해하고 금융시장에 부채 증가와 위험 쏠림 시그널(신호)을 제공할 위험이 있어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한 기간 이어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도 지난 2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생활물가가 높은 오름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물가 전망 경로상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물가 목표(2%) 수렴에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향후 물가 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금리 인하 뒤로 밀리는 분위기, 우리가 먼저 내리기 쉽지 않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 예상 시점이 뒤로 밀리는 것도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를 신중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전일 발표된 미국의 3월 CPI 상승률이 시장 전망치를 웃돌면서 미국 금리선물 시장에서 Fed가 오는 6월에 기준금리를 동결할 확률이 40%대에서 80%대로 치솟았다.
시장에서는 미국이 2분기가 아닌 3분기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선태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Fed는 미국의 근원물가가 확실하게 내려가는 것을 충분히 확인한 후에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본다"며 "인하 시기는 3분기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은도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현재 기준금리는 5.25~5.50%로 한국보다 2.0%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도 CPI 지수가 높게 나오면서 금리 인하에 신중한 상황이기 때문에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며 "유가 등 원자재 가격도 기대만큼 빠르게 떨어지지 않고 있어 인플레이션 억제 차원에서도 당분간은 지금의 금리 수준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을 중심으로 국내 경기가 개선세를 보이는 것 역시 기준금리 동결을 이어가게 만드는 요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565억6000만달러로 6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특히 반도체 수출은 117억달러로 21개월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여전히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나 부동산 쏠림 등 금융 불균형도 문제다. 지난해 4분기 말 가계 신용(빚) 잔액은 1886조4000억원으로 전 분기 말보다 8조원 증가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높은 금리에도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지속된 영향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신용 비율도 작년 말 기준 100.6%에 달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우리나라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증가하고 산업생산이 회복되면서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하할 명분이 약화했다"며 "한은이 오는 8월 또는 10월께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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