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역 2번 출구 앞. 출근길마다 인도 위에 주차된 유세차량을 발견할 수 있다.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마치 누가 순번이라도 정한 듯 번갈아 가며 다른 정당의 차량이 서 있다.
후보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안녕하세요. 기호 ○번 △△△입니다”라며 명함을 나눠주고, 연설자는 상대 정당을 깎아내리면서 "법을 지키는 정당을 뽑아달라"는 모순적인 발언까지 한다. 유세차량이라고 해도 교차로, 횡단보도, 건널목, 보도 등에 세우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그러나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는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는 이유로 단속을 꺼린다. 사실상 선거기간엔 무규범 상태이고, 후보자들만이 특혜를 누리고 있다.
교통법규위반, 소음, 비방 현수막은 ‘선거운동 3대 적폐’로 불릴만하다. 대통령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던 2022년 선거 유세 관련 민원은 1만1746건이 접수됐다. 이는 2021년(386건), 2023년(298건)에 비해 3배가량 높은 수치다. 3월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2월과 3월 각 1744건·1725건, 6월1일 전국동시지방선거 전후인 5월과 6월 각각 4063건·1184건을 기록했다.
시끄러운 유세차량 음악과 마이크 연설은 선거 때마다 단골 이슈다. 현행법상 유세차량 확성장치는 정격출력 3㎾, 음압 수준 127㏈을 초과할 수 없다. 그런데 철도 변 소음은 100㏈, 자동차 경적 소음이 110㏈, 전투기 이·착륙 시 발생하는 소음이 120㏈임을 고려한다면 선거 소음 규제가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서울 광진구에서 만난 한 시민은 “그 정도까지 허용된다고요?”라며 놀라기도 했다.
투표일이 다가오자 경합지역에서는 비방 현수막이 난무한다. 실제로 천안갑 지역구 후보들은 현수막을 놓고 명예훼손 고발 등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정당은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에 현수막을 배치한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현수막의 홍수는 도시 미관을 어지럽히는 요인이다. 최선의 방법은 정당 간 합의로 자율규제를 하는 것이지만,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총선 이후 새로운 국회가 출범한다면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기를 바란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불법과 탈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행동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국민 대표자를 자처하며 선거에 나선 이들이라면 무엇이 국민을 위한 길인지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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