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값·유가 등 물가압박 대응
최 "복합위기" 진단…대응책 고삐
민생현장 18회 방문, 장차관회의 60회 열어
윤석열 정부의 2기 경제팀 수장을 맡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오는 6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여파로 잔뜩 침체된 내수 위기 속에 출발한 경제팀은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사태로 불거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리스크에 대응하고, 각종 민생 안정 대책을 쏟아내며 숨 가쁜 100일을 달려왔다.
최 부총리 취임 당시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파고 속 저성장이 맞물리면서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 닥쳐올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주요 경제 예측기관은 한국 경제성장률을 2%대 초반으로 낮췄고, 연간 무역수지 적자는 이어졌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전쟁, 미·중 간 패권다툼을 계기로 글로벌 전장에서 거세지는 각국의 자원 무기화와 공급망 변수 등 대외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여파에 부진한 가계소득마저 내수회복에 찬물을 끼얹었다.
2기 경제팀의 키를 잡은 최 부총리는 이 같은 경제 상황을 "복합위기"로 진단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물가 안정 기조를 조속히 안착시키고 수출 회복 흐름을 민생과 내수 모든 분야로 확산시켜 민생경제 회복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첫 100일을 물가 안정과 내수 진작에 올인했다. 1월16일을 시작으로 물가동향과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2주에 한 번꼴(6회)로 열었고, 현장 행보를 이어갔다. 후보자 신분이던 지난해 12월13일 서울 영천시장 방문을 시작으로 취임 후 가락시장(1월23일), 충북 사과농가(1월29일), 인천공항 세관(1월30일), 성남 하나로마트(3월25일), 사과연구센터(4월1일)를 찾았다. 민생 현장만 18차례 돌아봤다. 물가를 비롯해 민생·금융·수출 등 경제 상황 전반을 점검하고 대응하는 장차관 회의는 60차례 열었다.
소상공인 126만명에게 20만원씩 전기료를 감면해 주고, 상반기 전통시장에서 신용카드를 쓸 때 적용하는 소득공제율을 40%에서 80%로 두 배 높였다. 농축산물 가격 안정 지원을 위해 1500억원가량의 재정을 투입했고, 국민 부담을 낮추기 위해 2002년 부담금 체계 도입 이후 처음으로 91개 부담금을 원전 재검토해 32개를 정비하기도 했다. 예산이 부족하니 세금 깎아주는 정책을 총동원한 것이다.
하지만 취임 100일을 나흘 앞두고 최 부총리가 받아든 물가 성적표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한풀 꺾인 듯했던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간 과일값에 국제유가 불안까지 겹치면서 다시 3%대로 올라섰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3.1%로, 지난 2월(3.1%) 이후 두 달 연속 3%대를 찍었다. 지난 1월 2.8%로 낮아졌다가 다시 뛴 것이다. 물가 폭등의 주범인 논란의 사과값은 1년 전보다 90% 가까이 치솟아 정부가 통계작성을 시작한 이래 40년 만에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는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2.6%로 전망하면서 상반기 3%대 물가상승률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민심의 바로미터인 물가가 급등세를 이어가자 최 부총리는 "3월에 연간 물가의 정점을 찍고 하반기로 갈수록 빠르게 안정화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물가 흐름을 낙관하기엔 악재들이 너무 많다. 지정학적 위기로 국제유가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90달러 선에 육박했다. JP모건을 비롯해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오는 9월 브렌트유가 100달러선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 부총리의 남은 과제는 더 치밀한 내수 대책이다. 하반기 정부 목표치인 2%대 물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한 내수 전략을 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총선 이후 유류세 인하 종료, 전기료와 가스료 인상 가능성 등 관리물가 상승 여력도 남아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교 교수는 "정부 지원책은 한시적인 대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며 "고금리·고물가로 실질소득이 줄면서 소비 심리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물가는 하반기 금리 인하에도 걸림돌이다. 국제유가·원자재 비용 상승 등 정책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대외 리스크가 더 커질 경우 최 부총리는 남은 임기에도 고물가 추세를 확실하게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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