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인터뷰]다단계 전문 수사 '국내 1호' 김현수 경정
불법 다단계 범죄는 '경제 살인'
복합적 형태로 진화…투자원칙 새겨야
서울 수서경찰서 소속 김현수 경정은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다단계 사기의 심각성을 거듭 강조했다. 김 경정은 20여년간 유사수신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해온 불법 다단계 수사 전문가다. 특히 2018년에는 경찰청에서 국내 1호 다단계 유사수신사범 전문 수사관으로 선발, 각종 유사수신 범죄 수사 현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김 경정은 불법 다단계 범죄를 일종의 '경제 살인'으로 정의했다. 유사수신 범죄는 범죄 수익금 회수율이 채 5%가 되지 않는 데다 한번 터지면 서민들을 상대로 대형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비상장 주식, 가상화폐 사기 기승…복합적 형태로 발생
김 경정은 과거 주부와 청년 실업자 등을 타깃으로 건강식품 사재기를 강요하는 수법에 한정됐던 불법 다단계 범죄가 최근에는 다양한 투자 사기 수법과 결합하며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 범죄에서 이른바 '복합형 범죄'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찰청의 최근 5년간 범죄통계자료에도 이 같은 경향이 나타난다. 몇 년 사이 추가 투자자를 유치하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기존의 다단계 수법에 비상장 주식, 가상자산 투자 등 신종 사기를 결합한 범죄가 대거 발생했다. 물건을 사면 포인트를 적립해서 막대한 수익을 돌려주겠다는 이른바 '포인트 마케팅' 영업과 다단계 사기를 합친 범죄 수법도 횡행한다.
김 경정은 "사기는 일종의 범죄 종합예술이라 볼 수 있다"며 "과거 다단계 사기는 사행성을 조장하거나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수법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복합적으로 범죄가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수법을 합친 형태의 범죄가 횡행하다 보니 동일인이 수개의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실체적 경합범으로 처벌하는 사례 역시 늘었다"고 설명했다.
IT기술에 발맞춰 새롭게 등장한 금융상품과 결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투자자와 대출자를 연결하는 P2P금융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후원받는 크라우드펀딩 등과 사기 수법이 결합하는 식이다. 그는 "핀테크 사업이 활성화되고 신종 금융기법이 발달하면서 다단계 사기도 고도로 지능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기망 입증 어렵고 솜방망이 처벌…재범 느는 악순환
수법이 고도로 진화하고 있다 보니 모집책을 잡기까지 수사관들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모집책이 피해자를 기망해 재산상 이득을 취득했다는 정황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경정은 하위 모집책들의 경우 자금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공동정범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모집책이) 피기망자를 기망해서 이들이 재산상의 처분 행위를 했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며 "하지만 자금의 흐름을 모르는 하위모집책을 대상으로 기망사실과 처분 행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경정은 다단계 범죄에 대한 전문성을 십분 활용해 다양한 법리를 동시다발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으로 이 같은 난관에 맞서고 있다. 업무상 배임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비롯해 미필적 고의로 기만행위를 저질렀는지 등의 여부 등을 다양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단계 범죄를 억제하려면 형량을 높여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다단계 범죄는 추후 다른 형태의 다중사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현행법상 유사수신범죄의 법정 최고형은 5년 이하 징역에서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불과하다. 모집책들이 재범을 저지르는 악순환을 부르는 셈이다.
김 경정은 "실제로 (피의자들이)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또 다른 범행을 모의하는 사례가 아주 많다"며 "처벌로 얻는 불이익보다 범죄수익금이 훨씬 많다 보니 별다른 노력 없이 상당한 수익을 올렸던 피의자들이 스스로 범행을 중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현수 경정이 칠판을 가리키며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설명하고 있다. 칠판에는 금융투자상품과 투자업의 종류에 대한 분류가 빼곡히 적혀있다.[사진=이지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투자의 원칙' 기억해야…유관기관도 공조 체계 구축 필요
다단계 사기 처벌 수위가 낮고 범죄 수익금에 대한 회수 가능성이 낮은 만큼 사전에 범죄를 예방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김 경정은 범죄 예방의 첫걸음은 투자에 대한 정의를 되새기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모든 투자에는 원금 손실을 넘어 투자금 전체를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이 존재한다"며 "이 평범한 진리를 항상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익모델이 복잡한 사업의 경우 전문가와 상담해볼 것을 권고했다. 김 경정은 "수익 구조가 복잡하고 불투명한 정보를 제공한다거나 특정인에게만 투자 정보를 제공할 경우 사기의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고 판단된다"며 "주변 전문가와 상담하거나 투자 서류를 꼼꼼히 살펴 위험성을 예측해보는 것이 범죄 피해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아울러 급증하는 다단계 사기에 대응하고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도록 관계 기관의 노력도 강조했다. 김 경정은 "대형 금융투자 사기 피해자들은 피해를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사회적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며 "유사수신 범죄에 대해서 금융감독원과 경찰청, 검찰청, 국세청 등이 긴밀한 공조 체계를 구축해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기 단계부터 일당들이 형성한 수익에 대해 보전 조치를 하고 피해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이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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