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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우먼톡]이혼 심리 앞에서 당당히 맞선 조선여성 신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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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모함·거짓 증언에 투옥돼
수천 언에 달하는 진술로 반전
조정 대신들까지 찬반 논란 이슈

이한 역사작가

이한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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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양반 여성의 이름들은 전하지 않는다. 때로 위패나 족보, 가족들의 기록에 남아있을 때도 있지만, 웬만해서는 드러내지 않았고 부모조차 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누구 어미'라고 부르곤 했다. 그런 여성의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는 때는, 천하의 죄인이 되었을 때였다. 여기 한 여성이 있다. 이름은 신태영. 처음에는 부인 신씨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졌었다.


1704년, 양반 유정기는 아내 신씨와 이혼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예조에 올렸다. 유정기의 말에 따르면 신씨는 미친 여자였다. 집안 제사를 어지럽히고, 집에 불을 지르고, 도박판을 벌이며 욕설을 퍼부어댔다고 했다. 이미 두 사람은 10년 넘게 별거 중이었는데, 그걸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유정기는 이혼을 요청했고, 유정기의 친척들은 다 함께 신씨 부인의 악행들을 낱낱이 적어 올렸다.

그리하여 부인 신씨는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가두어지고, 이후로 이름 '태영'이 천하에 드러난다. 비록 부부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해도 이것이 과연 형조까지 가야 할 일이었을까? 이제 그냥 이혼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천하의 악녀로 낙인찍혀 처벌받게 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신태영은 좌절하거나 슬퍼하는 대신 혼자서 세상과 맞섰다.

감옥에 갇힌 신태영은 자신의 사정과 억울함을 낱낱이 밝혔다. 장장 수천 언에 달했다는 그녀의 기나긴 진술을 통해 밝혀진 상황은 유정기가 말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원래 신태영은 유정기의 후처로 결혼하여 아이를 5명이나 낳고 27년을 함께 살았다. 그런데 유정기는 새로 첩을 들여 편애하게 된 이후로 신태영을 구박하게 되었다. 그런데다 전처의 자식들마저도 신태영을 괴롭혔다고 했다. 그런 사정이 밝혀지자 이제까지의 상황이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신태영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들은 애첩이거나 남편 유정기에게 청탁받은 사람들이었기에, 증언의 효력이 없어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때 신태영이 했던 진술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누가 들어도 감탄할 정도로 유려하고 사리가 맞아들어갔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의 사관은 '신태영 뒤에 글솜씨 좋은 관리가 있는 게 아닌가'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리 있겠는가, 그 관리는 신태영의 뒤가 아니라 안에 들어가 있었다. 환난을 겪고도, 억울한 지경에 놓이고도, 위기에 몰리고서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인물은 배후의 누군가가 아니라 신태영 본인이었다. 결국 심리가 계속되면서 이 사건은 조선의 커다란 이슈가 되었고, 수많은 찬반 의견이 쏟아져 나왔으며 마침내 유정기의 이혼 신청은 퇴짜를 맞았다.


그런데도 1712년 유정기는 다시금 신태영과 이혼을 시켜달라고 요청했다. 나이 60이 넘었으면서도 왕의 행차 앞에 엎드려 호소하는 정성까지 보이면서였다. 이번에도 다시 신태영의 이혼 문제를 놓고 조정 대신들이 치열하게 다투는 논란이 벌어졌는데, 미처 판결이 나오기 전에 유정기는 세상을 떠났다. 이혼하고 싶어했던 사람은 죽었어도 논쟁은 이어졌으니, 숙종은 마침내 ‘신태영에게 잘못이 있지만’ 이혼을 하면 나쁜 전례를 만들 수 있다며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신태영은 끝내 유정기의 아내로 남았다. 지금이라면 그냥 시원하게 이혼하고 잘 사는 게 복수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조선 시대의 일이었다. 신태영으로서는 남편이 가장 원하는 일을 해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일은 단순히 한 부부의 이혼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약자였던 여성이 남편과 세상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일이기도 했다.

이한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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